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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사랑과 냉담

등록 2017-02-23 18:31수정 2017-02-23 21:32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조지아 오키프는 꽃을 확대해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과 뉴멕시코의 풍경화로 잘 알려진 화가로서 ‘미국 모더니즘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전문적 교육을 받을수록 정해진 틀을 모방만 해야 하는 토양 속에서는 그림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그 꿈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4년 동안 붓을 잡지 않다가 다시 화폭 앞에 선 그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목탄화 몇 점을 지인에게 보냈는데 그가 그 작품들을 명성이 높은 사진작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것이었다. 스티글리츠는 화랑 ‘291’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사진 작품을 전시하면서 사진을 다른 예술에 버금가는 분야로 정착시켰고, 또한 당시로서 가장 전위적인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첫선을 보이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티스, 로댕, 세잔, 피카소 등의 작품이 이곳을 통해 미국에 소개되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작품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훌륭하다고 극찬하면서 10점을 ‘291’에서 전시했다. 이렇게 그 둘은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남부에 살던 오키프가 뉴욕을 방문하면 곧 둘은 하나가 되었다. 2층까지 올라가는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랑을 나눴다. 스티글리츠는 누드를 포함한 많은 사진 속에 오키프를 담았고, 그것을 전시해 스캔들이 일기도 했다. 스티글리츠가 23살 연상의 유부남인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침내 이혼이 성사되자 4개월 만에 그들은 결혼했다.

흔히 쉽게 끓어오르는 사랑이 쉽게 식듯, 그렇게 결혼했지만 결혼 후 그들은 각기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오키프는 뉴멕시코에서 그림을 그렸고, 스티글리츠는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선 모든 일이 한마디 말도 없이 거래처럼 이루어져 서로 맞서기보다는 회피하기를 택했다. 오키프는 훗날 “사진 속의 인물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참으로 많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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