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섬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옳고 그름의 척도”라는 구호로 표방되는 공리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많은 철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수치로 계산한다는 그의 생각에 대해 일찍부터 비판을 가해왔다. 그렇지만 복지국가의 초석을 깔아놓은 급진적인 원리를 18세기 말부터 천명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런데 벤섬의 여타 주장을 들어보면 놀라움은 배가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앞선 생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유 경제를 옹호했던 그는 정치와 교회의 분리, 표현의 자유, 여성의 평등권도 내세웠다. 여기까지는 별로 파격적일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훨씬 더 나아가 여성의 이혼할 권리를 주창한 것은 물론 동성애 행위를 범죄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노예제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할 이유에 대해 논했고, 어린이는 물론 누구에게라도 가해지는 체벌에 반대했다. 오늘날에는 동물의 권리까지 보호하려 했던 그의 면모가 부각되고 있다. 뛰어난 자유주의 사상가 제임스 밀과 그의 아들 존 스튜어트 밀, 공상적 사회주의의 대표자인 로버트 오언 등이 그의 제자가 되어 그의 사상을 전수했다. 1832년 임종 시 그는 자신의 신체를 해부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그런 뒤 그 신체를 기념물처럼 보관하고 전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그의 신체는 런던 대학교에서 대중에게 전시되고 있다. 교육도 최대 다수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육체에도 적용시킨 것이었는데, 육체까지 제공한 결과 그는 런던 대학교의 “정신적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다. 도대체 이곳에서 보수의 중심이라고 부각되는 인물들에게서는 한 가지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을까? 생각을 하며 살아가다 보면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사람들이라도 한 가지쯤은 견해의 일치를 볼 때가 있는데, 정말로 모를 일이다. 생각이 없는 것일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