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다 할 정도로, 바이러스는 생명계에서 가장 바깥쪽에 놓여 있다. 단백질 껍질과 단순한 유전물질로 이뤄져 자체 증식력도 없다. 다른 생명체를 감염해야 복제·증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미미한 존재도 강점을 지니고 있다. 엄청난 숫자로 악조건에서도 존재한다. 어느 과학매체를 보면 박테리아를 감염하는 바이러스는 지상 박테리아를 이틀에 절반가량 파괴할 정도로 박테리아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얘기된다. 물론 박테리아도 바이러스에 맞서는 면역체계, 놀라운 증식력 또한 갖추어 평상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런 바이러스에 몰랐던 능력이 보태질 듯하다. ‘바이러스도 서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어떤 바이러스들은 서로 소통하여 숙주를 어떻게 공격할지 그 전략을 정한다는 이스라엘 연구진의 연구가 <네이처>에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박테리아를 감염하는 바이러스들은 대체로 두 가지 공격 전략을 구사한다. 첫째 급속한 복제·증식을 꾀해 숙주인 박테리아를 파괴하는 길, 둘째 숙주를 살려두고 숙주 게놈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선 ‘때’를 기다리며 휴면하는 길, 이렇게 두 가지 생활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택에서 바이러스끼리 주고받는 ‘신호 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처음 발견된 것이다. 소통 시스템은 단순하다. 동료 바이러스들이 이미 많은 박테리아를 감염해 파괴하면 그 결과로 어떤 단백질 조각 분자가 많이 생성된다. 나중에 등장한 바이러스가 이 분자들이 많다는 걸 감지하면, 바이러스에선 숙주를 살려둔 채로 그 안에 잠복하는 생존 전략이 작동한다. 이때 조각 분자들은 파괴 공격을 감행해야 할지, 잠복에 들어가는 게 나을지를 알려주는 동료의 메시지이자 언어인 셈이다. 우리에게 여러 나랏말이 있듯이 바이러스 종마다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분자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사실, 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은 인간사회를 설명하는 사회적 용어로 쓰인다. 그런데 이젠 생물학에서도 널리 등장한다. 박테리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선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세포 간 커뮤니케이션도 생물학의 주요 주제이다. 소통은 자연계에서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생물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그동안 찾아낸 소통의 원리다. 이른바 ‘정족수 감지’. 주변에 동료 박테리아들이 남긴 신호 분자가 일정한 수를 넘을 때에야 박테리아는 그 신호를 자극으로 받아들여 특정 유전자를 작동하고, 그럼으로써 주변 박테리아와 더불어 집단행동에 나선다. 정족수 문턱을 넘을 때, 그 자극은 박테리아의 성장, 독성, 운동, 보호막 생성 같은 집단행동의 특성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가 된다. 최근 다른 연구에선 콜레라 박테리아가 정족수 감지의 자극을 받을 때 특정 유전자를 발동해 자기 몸 모양을 숙주 동물의 장내로 파고들기 좋게 바꾼다는 보고도 있었다. 넓은 시야에서 보면 소통은 자연의 일반 현상이다. 분자 언어를 구사하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소통이 있고, 개미나 벌과 같은 곤충에서는 화학 언어를 구사하는 소통이 있다. 최근 나온 다른 연구는 박쥐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그것이 일대일로 나누는 대화이며 거기엔 다양한 맥락과 상황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었다. 살아 있는 무엇이건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도 무엇을 왜 어떻게 소통하는지, 소통의 의도에 맞게 적절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는지 생각할 줄 아는 건 아무래도 사람의 능력인 듯하다. 이렇게 보면 제대로 된 소통을 생각하고 행할 때 인간다운 소통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삶과행복팀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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