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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염병하는 애국

등록 2017-02-02 18:00수정 2017-02-02 20:58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그리스 출신 코스타 가브라스는 정치를 중시하는 영화감독답게 격변을 일으킨 현대사의 사건들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의 주요 소재의 하나는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았던 냉전체제이다. 특히 그는 자유 진영의 선봉이라는 미국이 우방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지구 도처에서 독재 체제를 옹립하는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브라스의 장점은 그 거대 구조를 개인이나 가족의 틀 속에서 풀어내는 데 있다.

실화가 바탕인 소설이 원작인 영화 <의문의 실종>은 칠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부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 아래 자행된 1973년의 쿠데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언론에 종사하는 미국 청년 찰스 호먼은 칠레에 미국 고급 장교들이 많이 와 있는 것을 보고 의심을 품어 조사를 하다가 실종된다.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찾기 위해 칠레에 입국한다. 그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자부심과 존경심을 갖는 건전한 미국인 사업가다. 급진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며느리와 대립하지만, 점차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서 며느리를 이해하게 되고, 미국 정부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된다. 대사관과 정보부에 도움을 청하고 미국의 정치계에도 연락을 취하지만 아들을 찾을 길은 묘연한데, 결국 벽 속에서 아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관료들이 하는 이야기는 한결같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에드 호먼은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정부 공직자 11명을 아들 살해의 공범으로 고소했다. 아들의 시신은 정확한 부검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7개월이 지난 뒤에야 미국으로 호송되었다. 게다가 디엔에이(DNA) 검사 결과 그 시신마저 아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법정 소송에 필요한 자료들은 국가 기밀로 분류되었고, 결국 소송은 기각되었다. 관련 국가 기관, 군수 산업,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국익일까?

태극기의 물결이 넘쳐나는 이곳에서도 애국이 염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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