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정치적 거대 담론들 역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포하고 있는 거짓 기사를 보란 듯 보여주는 사람에게 그 기사 내용이 허위라고 가르쳐줬더니 “정치하는 것들은 다 똑같아. 나는 정치에 별 관심 없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은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매우 잘못된 정치적 입장이다. 독일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에 차량 소유자가 원하는 글자를 선택해 표기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사 기자가 덴마크에서 정유라씨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냈을 때도 차량 번호판에 ‘최순실’을 뜻하는 글자(CS)가 있는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표기가 금지된 글자들도 있다.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를 뜻하는 NS나 나치 친위대(Schutzstaffel)를 뜻하는 SS 등의 글자는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규제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적 근거는 ‘위헌 단체’를 상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성과는 그렇게 사회의 미세한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적 심판이 끝난 ‘나치’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기관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이고 우리나라도 군사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87년에 6공화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같은 취지로 헌법재판소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역사를 뒤로 돌리는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전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러한 헌법재판소가 얼마 전 노동자들에게 작은 숨통이 트이는 결정을 했다. 근로기준법 제26조 ‘해고의 예고’에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여야 하고, 30일 전에 예고를 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흔히 말하는 ‘해고수당’이다. 그런데 같은 법 제35조 ‘예고해고의 적용 예외’에서는 “월급근로자로서 6개월이 되지 못한 자”에게는 해고수당을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했다. “해고 예고제는 갑자기 직장을 잃어 생활이 곤란해지는 것을 막는 데 목적이 있다. 해당 조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근무 기간 6개월 미만인 월급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개월가량 근무하다가 해고당한 뒤 학원장에게 해고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1·2·3심에서 모두 패소했던 학원 강사 송아무개씨는 이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결국 이 결정에 힘입어 같은 사건의 재심에서 지난 1월 말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실생활의 미세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정치적 거대 담론들 역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포하고 있는 거짓 기사를 보란 듯 보여주는 사람에게 그 기사 내용이 허위라고 가르쳐줬더니 “정치하는 것들은 다 똑같아. 나는 정치에 별 관심 없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은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매우 잘못된 정치적 입장이다. 설 연휴 전 촛불집회가 열렸던 날,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기금 마련을 위해 신영복 선생님 서화달력을 팔고 있는 천막에 들렀을 때, 갑자기 “도둑놈이다!”라고 외치면서 한 노동자가 달려나갔다. 한 사내가 기부금 모금함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한참 만에야 돌아온 노동자는 숨을 몰아쉬며 “아, 못 잡았어. 못 잡았다구…” 절망하는 표정으로 말했는데 입술이 떨리고 손발이 부들거렸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 노동자의 절망하던 얼굴이 잊히지 않아서 천막으로 다시 갔다. 며칠 전 어느 병원노조에서 받은 강사료를 봉투째 건네며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이는 “제가 중간에 인계받았는데… 그걸 못 지켰어요”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편히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돈을 훔쳐 달아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촛불의 열기는 단순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때문이 아니라 더 긴 세월 동안 악화돼 온 우리 사회 양극화에 따른 분출이라는 분석이 있다. 맞는 말이다.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심각한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민생이 어렵다”는 비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드’ 배치와 ‘트럼프’ 취임으로 상징되는 험난한 여건 속에서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이 실제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지금 국정농단 사태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든 이들이 노력해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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