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대단한 발견이나 놀라운 혁신을 담은 논문은 아니지만 간혹 생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연구물을 보는 건 과학 기자를 하는 재미 중 하나이다. 짧은 과학 논문이 웬만한 통찰을 담은 책 못잖을 때도 있다. 새해를 맞으며 지난해 온라인에 썼던 기사들을 둘러보다가 한곳에서 잠시 멈추었다. 잡초를 어떻게 여길 것인가. 농작물 수확량을 늘리려면 잡초를 부지런히 없애야 한다는 게 흔한 상식이고 또한 주말농장의 얕은 경험으로 볼 때에도 당연지사이겠지만, 미국 코넬대학의 농업과학 연구진이 지난해 말에 밝힌 연구결과는 그런 상식을 돌아보게 했다. 연구진은 농작물과 잡초, 둘의 일대일 관계만을 본다면 그건 경작지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을 다 본 게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론은 이렇다. 미국의 옥수수 경작지에서 자라는 ‘밀크위드’라는 잡초는 수확 증진을 위해 제초제로 없애야 할 성가신 존재이지만, 그 잡초가 어떤 조건에선 옥수수 수확량을 늘려주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설명을 들으면, 옥수수와 잡초는 수확 목표와 제거 대상의 관계인 것만은 아니다. 잡초엔 그 수액을 먹고 사는 진딧물이 꼬이고 진딧물은 기생말벌이 좋아할 단즙을 만든다. 기생말벌은 잡초 있는 곳에 꼬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옥수수에 피해를 주는 옥수수좀벌레한테 기생말벌은 천적이다. 기생말벌은 좀벌레 알에다 자기 알을 낳는데, 그럼으로써 좀벌레 개체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잡초에서 시작한 관계의 연쇄사슬은 진딧물, 기생말벌을 거쳐 좀벌레에 이르고, 결국 어떤 경우엔 잡초가 옥수수 피해를 줄인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학술지 <잡초 과학>에 낸 논문(bit.ly/2iOmFOD)에서 이런 관계를 실증적 수치를 이용해 입증해 보였다. 옥수수좀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경작지에서, 일정 규모의 잡초가 자랄 때 옥수수 수확량은 오히려 늘었다. 물론 잡초는 땅의 양분을 서로 차지하려고 옥수수와 경쟁하는 관계에 있으니까 좀벌레를 빼놓고선 그저 경쟁자일 뿐이고, 적정 규모를 넘는 잡초 번식은 옥수수 수확에 해를 끼칠 것이다. 또 이런 야외실험 결과를 다른 작물, 환경, 농법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농작물을 위해 잡초는 늘 없애야 할 존재로만 여기는 통념에 비해, 이 연구는 잡초의 ‘잘 보이지 않는’ 다른 역할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잡초와 옥수수, 둘만의 관계는 경쟁이다. 그러나 더 넓은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는 때때로 옥수수에 간접적인 협력자가 되기도 한다. 연구진은 제초제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잡초의 제초제 내성이 높아져 비용이 늘고, 다른 멸종위기종 곤충의 번식처인 잡초가 사라져 생태계가 위협에 처하는 또다른 비용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초고를 과학계의 몇몇 지인에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잡초 논문에서 공존이나 공생 같은 말을 떠올렸다. 자연은 들여다볼수록, 또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새롭고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농작물과 경쟁하는 관계에서만 인식되던 잡초는, 더 넓고 복잡한 세계의 관계망에서 어떤 경우엔 목표에 기여하며 함께 어울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주류는 아니지만 잡초의 역할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어지는 듯하다. 자연관찰의 결과를 인간 사회에 적용해 애써 의미를 찾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도 다 알 수 없는 관계망을 이루어 ‘우리’가 되는 이 사회에서 목표에 당장 걸맞지 않아 보여 쉽게 외면되는 작고 성가시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도 실은 ‘우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관계와 존재에 대해, 새해에 한번쯤 더 생각하게 해준 잡초 연구진이 살짝 고맙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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