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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더 많은 촛불이 필요하다

등록 2017-01-04 16:17수정 2017-01-04 21:02

김지석

사회·국가 체제를 혁신할 ‘개혁’, 민주적 지도력을 강화할 ‘대선’, 국민주권을 신장시킬 ‘개헌’.

총명한(붉은) 닭의 해인 올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뭉뚱그려 표현하면 시민혁명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대로 된 혁명은 민주주의 발전의 고갱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또는 적어도 내가 유럽 근대사의 ‘위대한 헌법 제정 국면들’이라고 부르는 몇몇 집중적인 변화의 시기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었다.”

<민주주의 벼리기>(Forging Democracy, 한국어판 <더 레프트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라는 책을 쓴 제프 일리 미국 미시간대학교 석좌교수의 통찰이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 확산에는 중요한 초국가적 차원이 존재한다. 근현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유럽에서 이런 초국가적인 순간은 다섯 차례 있었다. 이 시기들은 이후 수십년의 한계와 가능성을 규정했다. 1776~1815년, 1859~71년, 1914~23년, 1943~49년, 1989~92년이 그것이다.

1776~1815년은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혁명 및 그 성과를 확산시킨 나폴레옹전쟁 등이 이어진 시기다. 1860년대엔 유럽 주요 나라에서 자유주의적 입헌주의라는 대중정치의 지속적인 틀이 확립됐다. 이 틀은 20세기 초반 새로운 급진적 갈등이 시작되면서 해체되기 시작해, 1차대전과 그 직후인 1914~23년에 파시즘을 탄생시킨 혁명과 반혁명의 양극화한 정치를 위한 무대로 바뀌었다. 2차대전과 그 직후인 1943~49년에 새로 짜인 틀의 핵심에는 범유럽 차원의 반파시즘 대중 합의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후 20년 이상 ‘황금기’가 이어졌다. 1989~92년은 동유럽에서 민주혁명이 벌어진 시기다.

우리나라도 이에 상응하는 민주혁명의 사이클을 갖고 있다. 1960년의 4·19혁명, 1987년의 6월민주항쟁, 지금의 촛불 시민혁명이 그것이다. 4·19혁명과 6월항쟁이 자유주의적 입헌주의에 해당하는 틀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면, 지금의 시민혁명은 박근혜-박정희 세미파시즘 체제를 청산하고 우리나라에 걸맞은 황금기로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유럽의 황금기에는 자본주의의 안정, 완전고용과 실질임금 상승, 생활수준 향상, 광범위한 토대를 갖춘 사회적 합의 같은 목표들이 이뤄졌다. 촛불혁명은 이런 복지국가의 틀에다 황금기에 이어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퇴행을 극복하는 내용까지 담아야 한다.

모처럼 기회를 맞았지만 시민혁명의 전망이 꼭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차즘 드러나는 방해세력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우선 박 대통령과 낡은 체제를 떠받쳐온 이들이 준동하고 있다. 친박 정치인과 여전히 냉전 논리에 사로잡힌 관변단체 등이 그들이다. 정치·경제·언론·교육·종교 등 각 분야에 포진한 기득권 세력도 개혁에 대한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1차 방어선은 최순실 등 구체적 범죄 혐의가 드러난 이들만 처벌받고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짓는 것이다. 과거 5·16쿠데타 세력이 다양한 민주화 요구를 혼란으로 규정지었던 것과 닮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온건한 야권 또는 중도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것을 2차 방어선으로 삼고 있는 것 정도다. 이들에게 지금 상황은 ‘박근혜의 실패’일 뿐 ‘낡은 체제의 실패’나 ‘보수의 실패’가 아니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상당수 야권 정치인까지 포함한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시민혁명의 성패를 가름할 여러 분야의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보다는 변화에 따른 정치적 이익을 얻는 데 더 관심이 있다. 특히 대선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움직이는 이들은 알게 모르게 시민혁명의 동력을 갉아먹는다. 이들은 기존 의회정치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인 듯이 국민을 현혹하지만, 이는 역사적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18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의회정치가 민주주의 정치활동을 압도적으로 지배했다. 다만 1960년대 이후에는 더는 그렇지 않았다. 국지화하고 종종 특수주의적인 ‘운동’ 정치로 이뤄진 다양한 의회 외부 영역과 영구적인 의회라는 장 사이의 관계가 민주주의 갱신의 핵심 전선이 돼가고 있었다.”

촛불은 시민혁명의 핵심 동력이자 의회정치의 감시자다. 2016년 마지막날까지 1000만개 이상의 촛불이 전국의 거리를 밝혔다. 시민혁명을 완수하려면 더 많은 촛불이 필요하다. 촛불은 올해 내내 타올라야 한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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