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 해를 마감하는 촛불집회의 선도 차량에서 구호가 들렸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김기춘은 옆방으로!” 간담회에서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고 자기변명으로 일관한 피의자 박근혜도, 녹음기·카메라·노트북컴퓨터라는 ‘무기’도 없이 간담회라는 ‘전투’에 나간 언론도 변하지 않았지만, 이런 촛불들이 결국 새해에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지난해, 농민 백남기 어르신이 사망하신 뒤 11월 말 서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 일정에 맞춰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나와 ‘전봉준 투쟁단’을 꾸렸다. 전남 해남에서 출발한 ‘서군’과 경남 진주에서 출발한 ‘동군’의 트랙터들이 경기도 안성에 집결했을 무렵, 여성 농민들의 수련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남편들 중 상당수가 해남에서 출발한 ‘전봉준 투쟁단’에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서 보니 참석자들의 ‘연세’가 내 짐작보다 훨씬 높았다. 나에게 몇 번 연락을 했던 활동가와 비슷한 연배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그 활동가는 그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짐작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네요. 강의 자료를 조금 더 쉽고 부드럽게 고쳐야 되겠습니다.” 서둘러 가방을 여는데 활동가가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투쟁 경력 짱짱하신 분들이구요, 요즘도 집회에 빠짐없이 나가시는 분들이에요.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강당 뒤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던 회원이 말했다. “지금 웬 남자가 하나 들어와서 사진을 찍겠다고 뒤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디, 워메 겁나게 신경 쓰이네요잉. 말이 징하게 안 나와버리네요잉.” 둘러보니 남자라고는 나 한 사람뿐이다. 그날 찐한 사투리를 쓰시는 여성 어르신들이 남자 하나를 계속 ‘갖고 노시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좋게 느껴졌다. 강의 중에 기부문화조차 자리잡지 못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비정규직 고용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면서 “여러분들은 모두 농민회비를 열심히 내시고 있는 분들이니까, 모두 기부금을 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맨 앞줄에 앉아 계시던 분이 대뜸 말했다. “그걸 강제로 걷어가! 강제로 걷어간다고!” 서울까지 진격한 ‘전봉준 투쟁단’이 양재에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다가 36명이 연행당하고 차량 29대가 견인되고 3명이 구급차에 실려 가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세상 다른 곳에서 우리는 그렇게 또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목이 메었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어깨가 계속 움츠러들었다. 지난 12월31일 충주에 내려갔다가 ‘송박영신’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올라와 지하철을 탔다. 나이 많은 사람들 한 무리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마다 태극기를 든 것으로 보아, 박근혜 탄핵 반대 맞불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더니 금세 목소리가 커졌다. “젊은것들이 지금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까 나이 든 우리라도 나서서 나라를 구해야지!” “지금 이만큼 먹고살게 해준 게 다 누구 덕인데 그 공도 모르고 얻다 대고 감히 탄핵이야, 탄핵이!” 목적지에 도착해 지하철에서 내리면서도 유독 나이 든 여성 한 사람이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태극기로 얼굴에 삿대질을 하며 훈계를 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머릿속에 든 게 똥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촛불 들고 나라 망치는 짓이나 하는 거지. 그렇지? 니 머릿속에 지금 똥밖에 없잖아?” 자신이 내뱉은 말에 스스로 고무돼 통제가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 보도로만 접했던 광기를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본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 상황에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나를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독한 말로 대응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젊은이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개찰구를 나서면서 “야, 나 지금 ○나 웃기는 일 있었다”라며 까르르 웃었다. 그 젊은이가 나보다 몇 배나 더 강해 보여서 걷는 동안 어깨가 계속 움츠러들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촛불집회의 선도 차량에서 구호가 들렸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김기춘은 옆방으로!” “우병우도 옆방으로!” 사람들은 “그럼 남녀 합사동인가?” 웃으면서도 열심히 따라 외쳤다.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고 자기변명으로 일관한 피의자 박근혜도, 녹음기·카메라·노트북컴퓨터라는 ‘무기’도 없이 간담회라는 ‘전투’에 나간 언론도 변하지 않았지만, 이런 촛불들이 결국 새해에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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