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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보수의 분열, 기대와 우려

등록 2016-12-28 18:13수정 2016-12-28 20:51

보수신당은 분당선언문에서 포용적 보수, 서민적 보수, 도덕적 보수를 표방했다. 다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정당의 정체성이 강령 몇 줄 손본다고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의원뿐 아니라 당원들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거쳐 이를 체화해야 한다.
정석구
편집인

이른바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갈라졌다. 진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분열이 보수진영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한국 정당사,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도에 커다란 변화를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그동안 이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보수세력 안에서 가치를 중심으로 변신하려던 오랜 시도가 비로소 현실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보수의 분열이 합리적 보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면 우리 정치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도 좀 더 상식적이고 건전한 세력이 확장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말이 보수정당이었지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으로 부르기 어려웠다. 수구기득권 세력이 주류 행세를 해왔고, 일부 극우 인사들까지 전면에 나서면서 낮은 단계의 민주적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보수정당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존속하기에는 정당 내 세력 간의 인식차가 너무 컸다.

이번 새누리당 분열을 계기로 합리적인 보수세력과 사이비 보수, 즉 수구기득권 세력의 분화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남북 분단 상황에 기생하는 극우세력과 재벌체제에 뿌리를 둔 기득권 세력이 보수의 주류임을 자처하면서 정치 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발전이 지체됐다. 이들 세력을 무대에서 끌어내리지 않고는 한국 사회의 진정한 발전은 기약하기 어렵다. 이번 새누리당 분열을 시작으로 합리적인 보수세력이 한데 뭉쳐 보수진영의 주류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진전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개혁보수신당(가칭)이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보수신당은 분당선언문에서 포용적 보수, 서민적 보수, 도덕적 보수를 표방했다. 다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정당의 정체성이 강령 몇 줄 손본다고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의원뿐 아니라 당원들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거쳐 이를 체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머잖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이합집산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정책에서도 개혁성을 보여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을 탄핵한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개혁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정치개혁, 검찰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등 국가의 기본 틀을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하는 과제가 쌓여 있다. 보수신당이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보수세력으로 거듭나려면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 과제를 제도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우려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벌써 다음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새누리당과 ‘반기문 쟁탈전’을 벌이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경쟁력 있는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려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보수신당이 친박과 결별을 선언하고 개혁의 깃발을 내걸었지만 그것만으로 박근혜 국정 농단의 책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사과와 개혁 과제 실천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게 먼저다. 집권은 그다음이다. 집권에 실패하더라도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거듭난다면 그 자체로 한국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눈앞의 대선에 매달려 외연 확장에만 힘쓴다면 새누리당 2중대와 다를 바 없다.

사회·경제정책은 개혁을 표방하면서 안보에서는 ‘정통 보수’를 유난히 강조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도 불안하다. 그동안 보수진영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정세가 불리할 때마다 북한을 앞세운 색깔론을 꺼내 들곤 했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고, 강력한 대북 제재를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보수진영의 이런 기존 안보관이 과연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실효성 있는 안보관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어떤 안보관이 진짜 국익을 지키는 것인지는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에 매몰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 이후 한국의 보수정당은 영남, 특히 대구·경북(티케이)에 뿌리를 둔 영남패권주의 정당이었다. 그동안 우리 정치에서 영남패권주의가 남긴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보수신당마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진정한 보수가 되기는커녕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수구정당이 될 수도 있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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