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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촛불혁명은 ‘세계사의 등불’이다

등록 2016-12-14 17:12수정 2016-12-14 20:38

촛불혁명의 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게 바로 나라’라고 할 만한 공감력 있는 새 나라 만들기다. 포퓰리즘과 민주화 난맥상으로 고민하는 지구촌 시민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성공한 촛불혁명은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되는 세계사의 등불이 될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촛불 시민혁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라는 첫 고비를 넘겼다. 이제까지 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과거에 그랬듯이 섣불리 긴장을 푼다면 낡은 체제가 겉모습만 살짝 바꿔 온존될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촛불혁명은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계기로 대전환기에 들어간 지구촌 곳곳에서는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첫째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뚜렷한 포퓰리즘(대중주의) 현상이다. 포퓰리즘은 급진적이든 반동적이든 대중의 정서를 자극해 기성 정치를 뒤집으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민자 문제를 고리로 세력을 키우는 극우 정당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세력이 기댄 것도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의 배경에 있는 불평등 구조와 기성 정치권의 무능·부패 등은 대부분의 나라가 공유한다. 선진국에서 포퓰리즘 현상이 더 거센 데는 중산층 붕괴와 젊은층의 좌절, 한계에 다다른 복지국가의 현실 등이 작용한다. 하지만 포퓰리즘 세력이 득세하는 만큼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도 더 커질 뿐이다. 이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둘째는 여러 개도국에서 목격되는 ‘민주화 난맥상’이다. 2010년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인구 대국인 이집트와 터키에서는 오히려 독재 강화로 귀결됐고 시리아에서는 5년 반 이상 내전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대규모 난민이 발생해 세계 정치의 주요 변수가 됐다. 브라질 등 남미에서도 대중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분명한 정치·사회 발전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앞의 둘과 구별되는 셋째 유형이 촛불 시민혁명이다.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는 자발성·비폭력·지속성이라는 특성과 규모 면에서 유례가 없다. 232만명이 참여한 12월3일 집회는 현시대 세계 최대 규모였다(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주말을 이어가며 7차까지 진행된 대형 촛불집회는 일상의 삶이 정치와 문화·사회·교육 등과 분리돼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연대감과 낙관이 이끄는 역동성은 촛불혁명의 생명이다. 2014년 79일 동안 이어진 홍콩의 우산혁명이 연상되지만 촛불집회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성취물도 미흡했다.

촛불혁명의 과제를 두고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게 바로 나라’라고 할 만한 공감력 있는 새 나라 만들기다. 내용은 크게 경제·사회·정치 개혁과 평화구조 구축으로 수렴된다. 경제에서는 정경유착 차단과 재벌 개혁 등 경제 민주화, 불평등·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충이 핵심이다. 사회 분야에서는 검찰·언론·교육 개혁과 일하는 사람 및 시민들의 권리 강화가 우선이다. 정치에선 직접민주주의 제고, 효과적이고 균형 잡힌 통치구조,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선거제도 등이 필수다. 외교·안보에선 평화구조 정착이 중요하며, 북한 핵 해법을 비롯한 대북정책과 사드 문제 등도 이를 기본으로 재평가돼야 한다.

혁명은 기득권 세력과의 대결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상황이 수시로 달라지고 기득권 세력이 계속 모습을 바꾸는 탓에 전선이 분명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권력남용에 중요한 구실을 했던 검찰이 표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꾸로 국정농단을 거세게 규탄하던 일부 보수언론은 이제 촛불혁명의 열기를 가라앉히기에 급급하다. 이런 모습에 현혹돼선 안 된다. 황교안 과도정부가 공감력 제로였던 박근혜 정권의 아바타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중단시키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또는 박근혜 퇴진 이전에 해야 할 일은 개혁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입법과 대정부 압박 등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당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공학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통치구조를 바꾸려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개헌 관련 논란이 개혁과제 추진을 막아서는 안 된다. 개헌은 대선에서 후보들이 안을 내놓은 뒤 당선자가 책임 있게 관철하는 것이 올바른 경로다.

포퓰리즘과 민주화 난맥상으로 고민하는 지구촌 시민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성공한 촛불혁명은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되는 세계사의 등불이 될 것이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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