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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철도 최장기 파업, 정부·여당·철도공사 책임 크다

등록 2016-12-06 18:29수정 2016-12-06 19:06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파업을 못하게 하는 직권중재제도를 없애는 대신 하나 마나 한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만든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철도공사 경영진이 파업을 끝내기 위해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이번 철도노조 최장기 파업을 계기로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를 축소하고 필수유지업무 근무 인원수를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관계 법령들을 개정해야 한다.

파업 중인 철도노조 조합원들 교육을 마치고 철도회관 정문을 나서다가 마침 들어서고 있던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을 만났다. “웬일이냐?”고 묻기에 “교육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바쁜 양반이 어떻게 시간을 냈느냐?”고 한다. “두 달 전에 파업 준비하면서 잡은 일정”이라고 했더니 웃으며 농담처럼 말한다. “아이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준비하면서부터 아예 장기 파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는 위원장 얼굴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믿음이 읽혔다. 오늘로 72일째를 기록하고 있는 철도노조 최장기 파업은 지도부가 힘겹게 끌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임금 ‘0원’인 상황에서도 스스로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철도공사(코레일) 경영진이나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은 “7천여 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데도 열차가 큰 차질 없이 운행되고 있다”고 하면서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통해 “철도공사 경영효율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까지 했다. 마치 철도공사 인원이 남아돈다는 듯한 주장인데 이는 정말 우려스러운 시각이다. 파업 이후 대체 인력이 투입되면서 열차가 터널 안에서 멈추거나 정지 신호에도 계속 후진하는 바람에 차량이 벽을 뚫고 나가는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고되지 않은 경미한 사고들도 많은 상황이다. 근무자들의 피로도가 점차 높아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철도노조 파업 대오는 “올인하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강고하다. 국토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조합원 업무복귀율조차 8.7%에 불과하다. 파업 두 달이 지나도록 낙오자가 거의 없는 파업임에도 열차 운행이 큰 차질 없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교통대란이나 물류대란이 발생하지 않아 사람들이 불편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노동법의 ‘필수유지업무’라는 조항 때문이다.

본래 우리 노동법에는 철도·병원·전기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쟁의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 결정을 하면 파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직권중재 제도라는 독소 조항이 있었다. 2006년에 개정돼 2008년부터 시행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현저히 침해하는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도입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쟁의행위 관련 규정들을 정비했다. 필수공익사업장에서 노조가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때는 일정 비율의 인원을 반드시 업무에 투입해야 하고 파업 참가자 수의 50%까지 외부 대체 인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당시 법 개정의 취지였으나 지금은 노동자 파업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철도노조의 경우 파업을 해도 1만8372명의 출근 대상자 중 필수유지업무 인력 8460명은 일을 해야 한다. 국토부가 계획한 대체인력 6050명까지 합하면 1만4510명이 일을 하게 되는 셈이다. 파업을 못하게 하는 직권중재 제도를 없애는 대신 하나 마나 한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만든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철도공사 경영진이 파업을 끝내기 위해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이번 철도노조 최장기 파업을 계기로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를 축소하고 필수유지업무 근무 인원수를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관계 법령들을 개정해야 한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는 이유 중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 역시 크다. 철도공사의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정부의 지침을 외면하기 어렵다. 노사 집중교섭에서 “성과연봉제는 기획재정부 권고사항”이라고 강조한 경영진의 발언은 그 속사정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청와대나 정부의 어느 누구도 경영진에게 명확한 ‘오더’를 내릴 수 없으니 경영진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한심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와중에 11월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철도파업 해결을 위한 소위원회 구성이 국토부·새누리당·철도공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철도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난 주말 촛불집회 도중 “철도파업 힘내라”며 철도노조 방송차량에 찾아와 2만원을 건네준 초등학생 수준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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