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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흙수저는 박멸되어야?

등록 2016-11-24 18:15수정 2016-11-24 20:52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뉴욕 빈민가의 간호사였던 마거릿 생어는 정치적으로 좌파였던 건축가 남편에 동조하면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빵과 장미’의 구호로 알려진 로런스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여했고, 업턴 싱클레어나 엠마 골드만 같은 개혁적 인물들과도 교제했다.

이민 온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그는 많은 여성들이 피임에 대한 정보를 몰라 원치 않는 출산, 유산, 낙태의 고통을 겪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든 어머니들이 알아야 하는 것”, “모든 소녀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성교육에 관한 칼럼을 두 편 썼다. 그런 한편 그는 ‘산아제한’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미국 최초로 피임을 위한 임상실험실을 열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1873년에 제정된 ‘컴스톡법’은 음란성을 근거로 피임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피임이나 산아제한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는 많은 비판과 테러의 위협도 받았다. 가족계획에 대해 그가 쓴 책이 음란물을 규제하는 법에 위배된다고 기소당해 영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가 설립한 임상실험실에서 피임과 관련된 자료를 배포하였다 하여 체포되기도 했다.

1차대전 이후 마거릿의 관심은 피임의 문제에 있어 개인보다는 사회를 조금 더 향했다. 그는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없는 가족의 출산은 제한해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활동이 우생학 주장자들과 겹친다. 그는 사회가 개입하여 사회적 부적격자들의 출산을 감소시킴으로써 인간의 유전자 속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아제한의 도덕”이라는 1921년의 연설에서 그는 사회를 세 부류로 나눴다-가족 규모를 스스로 조정하는 “교육받은” 부류, 방법은 몰라도 중요성은 인식하는 “책임 있는” 부류, 가족 숫자 조정에 신경 쓰지 않는 “무책임한” 부류로. 세 번째 부류의 재생산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씁쓸한 그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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