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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키케로의 죽음

등록 2016-11-17 18:25수정 2016-11-17 20:44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로마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가로 꼽히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라틴어 산문의 품격을 한껏 높여, 라틴어를 넘어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산문의 역사는 키케로에 대한 반응의 역사라 불린다. 이탈리아의 문인 페트라르카가 훗날 그의 편지를 발굴한 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출발이라고도 말한다. ‘인문학’이나 ‘인문정신’을 뜻하는 ‘후마니타스’라는 단어를 그가 만들었으니 당연한 평가이다. 그 단어가 함축하는 내용까지도 그가 정립한 것이어서, 인문정신이란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점잖고 충실한 사적 삶을 영위하는 덕성”이라는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키케로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듯 정계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공화제를 신봉하며 자신의 문재를 발휘해 원로원의 적들을 준엄하게 고발하던 그에게는 적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원로원 체제를 비판하며 황제에 오르려던 카이사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키케로의 재능을 아껴 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도 키케로에게 계속 정치 활동을 권하는 등 친분을 유지했다.

정작 키케로에게 위험이 닥친 것은 카이사르가 사망한 뒤였다. 그는 카이사르의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안토니우스를 고발하는 연설문을 작성했다. 그리스의 명연설가 데모스테네스를 연상케 하는 글이었고, 그의 대중적 인기는 치솟았다. 그러나 정세의 변화는 다시금 안토니우스의 세력을 복구시켰고, 오히려 키케로가 궁지에 몰렸다. 키케로에게 자객들이 들이닥쳤다. 하인들이 숨기려 했음에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객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자네들이 하고 있는 행동에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만, 머리를 자르는 것 하나만은 제대로 하게나.”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하며 세도를 펼치던 자들이 그들끼리도, 심지어는 자기 혼자서도 말을 맞추지 못하고 추태를 보인다. 키케로까지 바랄 수는 없더라도 그 주변엔 어찌 이렇게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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