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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박근혜 특검’의 조건

등록 2016-11-16 18:08수정 2016-11-16 20:38

정석구 편집인

기어코 갈 데까지 가겠다는 건가.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이제는 ‘진박’(진실한 친박) 출신 변호사를 앞세워 버티기에 들어갔다. 김종필 전 총리 말대로 “5천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모양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봐도 청와대는 그 조직 자체가 ‘범죄집단’이었다. 국정을 운영하는 최고 권력기관이 아니라 박근혜와 최순실과 몇몇 비서관들이 정부기관과 기업을 사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사설 이익단체였던 셈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애초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대통령의 버티기로 수사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특검이 나서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낱낱이 밝혀내 단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여야는 오늘 국회에서 ‘박근혜-최순실 특검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특검팀은 특별검사(특검) 1명에 특검보 4명, 파견검사 20명, 수사관 40명 등 모두 65명으로 꾸려져 최장 120일 동안 수사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전방위적인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치기에는 수사 인력이나 조사 기간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이 특검의 자격을 판검사 경력 15년 이상의 변호사 등으로 제한함으로써 유능한 특검을 구하기도 어렵게 됐다. 국회 통과 전에 특검 자격 조건 등이 완화돼야 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누가 특검이 되느냐가 아주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벌써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하지만 단지 유명도나 국민적 지지도만으로 특검을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특검은 과거 단일 사건을 다룬 특검과는 달리 대통령에서부터 재벌 회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최고 권력자들이 수사 대상이다. 수사 범위도 몇몇 개인의 범죄 행위뿐 아니라 총체적으로 망가진 국가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만큼 엄격한 자격을 갖춘 유능한 특검을 뽑아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특검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우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판사나 검사 1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변호사라면 사실 권력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현직에 있을 때 승진이나 인사이동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력과 연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박근혜 정부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수사 대상이 현직 대통령부터 이 정부의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들인 상황에서 현 정부와 관련 있는 후보라면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게 옳다.

재벌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판검사 시절이나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재벌과 관련되지 않은 이를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유난히 재벌에 편향된 판결이나 변호를 한 경우는 제외해야 한다. 특검이 진행되면 재벌 총수 소환이 불가피할 것인데, 특정 재벌과 연계된 특검일 경우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검이 뛰어난 수사 능력을 갖춰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검사들을 원만하게 지휘할 수 있는 장악력도 필요하다. 과거 특검에 파견된 현직 검사들이 특검보다는 다시 돌아갈 검찰 조직에 충성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심지어는 태업을 하거나 수사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검사들에 대한 장악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판사 출신보다는 검찰 출신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하겠다.

도덕성 측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한다. 이번 특검은 단지 범법 행위를 가리는 역할뿐 아니라 법적으로 처벌하기 힘든 관련자들의 여러 비위들에 대해 폭넓은 조사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개인적으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면 외부 비난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 나이트클럽 사장한테 향응을 받은 게 드러나 징계를 받은 유영하 변호사가 대통령 변호를 맡아 비판이 일고 있는 마당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특검을 맡게 되면 자칫 특검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유능한 특검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두 야당은 최대한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이를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 서로 자기 정당에 유리한 사람을 선정하겠다는 욕심을 부리면 특검은 출발부터 반쪽이 될 수도 있다. 그건 100만 촛불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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