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동맹의 언어, 실리의 언어 / 조정훈

등록 2016-11-14 18:34수정 2016-11-14 20:30

조정훈
(재)여시재 부원장·전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사무소 대표

인간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면 놀라고 불안해한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바로 그 예다.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이 요동쳤고,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할 정도로 당황했다. 그렇다. 트럼프 정부는 기존의 미국 정부와 많은 부분에서 다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 관계의 양대 축인 안보와 경제 모두 그렇다.

먼저 안보 분야를 보자. 첫째, 한-미 동맹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다. 미국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움직이는 나라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의회를 포함한 겹겹의 통제기능은 견고하다. 트럼프는 시스템을 시험할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스템은 그의 엉뚱함을 길들일 것이다. 이런 미국의 시스템은 당연히 미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인다. 한-미 동맹의 유지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 그 틀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부담금 재협상은 현실이라 간주해야 한다. 선거유세 발언대로 부담 비율을 현재의 50% 수준에서 100%로 인상하면 약 1조원 정도 더 부담하게 된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전술적 의미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독립국가의 기본조건인 자주국방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상징적 규모의 미군 주둔을 포함한 포괄적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군인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을 모르는 민간인이 전쟁에 쉽게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제 군사행동 가능성은 오바마 정부보다 트럼프 정부가 더 높지 않을 것이다. 전직 군인들이 그의 핵심 외교 참모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안보위원회를 부산스럽게 소집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에 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경제 분야다. 우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체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또한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커졌다. 현 협정은 양쪽 모두 6개월의 통지기간을 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고, 미국의 경우는 의회 승인 없이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그 충격은 관리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수입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평균 약 2.5%다. 이 정도 인상으로는 대미 수출 상품들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결정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므로 당황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미국에 역으로 질문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으로 동북아 질서가 흔들리는 판에 2.5% 관세 때문에 한-미 동맹을 훼손하고 한국 내 반미 정서가 높아지는 것이 정말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냐고.

다만 중국과 미국의 보호무역 핑퐁게임이 발생하고 한국이 그 사이에 끼여 고전할 가능성은 있다. 이로 인해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중국 시장에서 우리 무역수지에 타격을 입을 수는 있을 것이다. 즉 미국 시장보다 중국 시장에 대한 대책이 더 시급하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와 4년을 어떻게 잘 보낼 것인가 걱정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예측할 수 있다. 기업가는 이윤 극대화, 대통령은 국익 극대화, 어찌 보면 당연한 프레임이다. 다만 우리가 알던 미국의 행동방식과 매우 다를 뿐이다. 그의 정부는 기존 미국이 중시하던 명분·관행을 내려놓고 철저한 ‘미국의 이익’(America First)을 국정운영의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동맹의 언어를 실리의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안보와 경제 분야에 산적한 한-미 현안들을 동맹관계에 의지한 호소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이라는 렌즈를 통해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트럼프 정부 4년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손에 달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12·3 내란 수사, 권한시비 끝내고 경찰 중심으로 해야 1.

[사설]12·3 내란 수사, 권한시비 끝내고 경찰 중심으로 해야

선관위 보안 푼 채 점검하곤 “해킹 가능”하다는 국정원 2.

선관위 보안 푼 채 점검하곤 “해킹 가능”하다는 국정원

[사설] 윤 대통령 ‘하야 없다’는데, 국힘 ‘탄핵’ 거부할 이유 있나 3.

[사설] 윤 대통령 ‘하야 없다’는데, 국힘 ‘탄핵’ 거부할 이유 있나

명예를 안다면 대통령직 사퇴하라 [성한용 칼럼] 4.

명예를 안다면 대통령직 사퇴하라 [성한용 칼럼]

윤석열 탄핵안 가결 D-2 [12월12일 뉴스뷰리핑] 5.

윤석열 탄핵안 가결 D-2 [12월12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