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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이공계가 정치를 말할 때

등록 2016-11-10 18:38수정 2016-11-10 20:48

오철우
삶과행복팀 선임기자

‘과학은 정치에 오염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이런 말 속에서 과학과 정치는 순수와 오염의 관계처럼 놓인다. 과학은 과학이고, 정치는 정치일 뿐일까?

이공계의 요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이공계의 교육·연구 현장에서 시국과 정책을 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조용하던 이공계 사람들을 사회참여의 공간으로 불러내고 있다. 이미 카이스트, 포스텍,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같은 과학기술 요람의 학생들이 민주 회복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과학자, 공학자도 나섰다. 얼마 전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라는 단체가 ‘500인 시국선언’을 냈다. 곧 이공계 대학교수들도 이런 흐름에 참여한다고 한다. 울산과학기술원의 한 교수는 “노벨상을 받는다 해도 정의와 공정이 지켜지지 못하면 그 사회에서 어떻게 과학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며 시국선언을 예고했다. 과학기술인들이 독자적으로 사회참여의 목소리를 내는 건 드문 일인데, 이런 흐름은 카이스트의 교수 사회를 비롯해 더 이어질 것이라고 이 교수는 전했다.

시국 관련 쟁점은 아니지만, 정부와 공무원이 주도하는 연구개발 정책을 비판하며 연구자 중심 정책을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데 현장 연구자들이 직접 나선 일도 있다. 이름난 과학자들도 동참한 교수·연구자 집단 1500명은 최근 국가 연구개발비에서 비대한 정부 주도 기획사업의 비중을 줄이고 연구자 주도 연구를 북돋울 ‘자유공모 연구지원’의 비중을 늘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기술인의 넓어진 사회참여와 높아진 목소리를 ‘과학에서 벗어나 정치로 나선 어색한 나들이’로 보진 말자. 과학도 합리적인 민주주의 아래에서 제 빛을 발할 테니 참여와 목소리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가치와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닿아 있는 것이다.

과학이란 본디 어떠하다고 얘기할 때, 흔히 ‘머튼의 과학 규범’이 자주 인용된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1910~2003)은 과학의 정신에는 첫째 보편주의, 둘째 공유주의, 셋째 공평무사, 넷째 조직적 회의주의라는 네 가지 ‘에토스’가 깃들어 있다고 했다. 이 넷이 더 넓은 사회에서 동떨어져 언제나 고유한 그런 과학의 모습처럼 얘기된다면 여러 해석 논란을 빚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과학을 과학답게 만들고자 과학자 사회가 애써 지켜야 하는 것들이라고 보면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나 머튼은 1942년 글에서 전체주의 독재 사회에서, 전근대적 인종차별 사회에서, 상업적인 자본 사회에서 과학의 보편과 공유, 공평무사가 훼손되고 과학 전문가의 권위가 오남용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렇기에 잘못된 곳으로 가는 현실 사회를 경계할 때에야 과학의 정신과 가치는 지켜질 수 있다. 이공계가 정치를 말할 때, 그것이 곧 순수한 과학 정신을 내려놓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합리적 의사소통과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는 사회에서 기초연구이건 응용개발이건 전문연구자의 창의성, 자율성, 신뢰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과학과 정치의 잘못된 만남을 종종 경험해왔다. 정부 입맛에 따라 연구기관장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고 출렁이는 국가전략 연구개발 정책이 주도하며 연구현장에선 ‘몰입 연구’의 환경이 흐트러진다. 이공계인이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목소리를 모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연구정책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 때 이뤄질 과학과 정치의 좋은 만남을 그려본다. ‘과학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정치에 눈을 감는, 순수와 오염 식의 관계가 과학과 정치의 좋은 만남일 수는 없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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