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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자괴감, 그 부끄러운 기억을 넘자

등록 2016-11-08 18:30수정 2016-11-08 21:07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다시는 또다시 자괴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오는 12일 거리에서 만나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간접 행동’의 한계는 어차피 ‘직접 행동’ 민주주의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면 그 책임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한다.

나도 ‘자괴감’이라는 단어를 글에 써 본 적이 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출근 시간에 회사 정문 앞에서 동료들에게 홍보물을 나누어주는 ‘출투’를 하러 갔을 때 그 노동자들에게 달려든 ‘구사대’가 다른 직원들이 볼 수 없는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가 마구 폭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던 내 모습이 스스로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자괴감이 들었다”고 쓴 적이 있다.

노동자들의 사연을 조금이라도 알려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리한 글이었지만 혹독하게 비판받았다. 노동자들은 “하 선생님이 왜 자괴감을 느끼냐? 느껴도 우리가 느껴야지”라고 했다. 회사가 친선운동부라는 명목으로 고용해 월급을 주며 언제라도 써먹을 수 있는 ‘개’로 사육하고 있는 ‘동네 폭력배’들에게 얻어맞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눈두덩이 부어오른 노동자들은 “주체가 아니라 구경꾼으로 와 있는 사람이 뭐하러 자괴감을 느껴요?”, “아이고, 도움이 못 돼서 서러우셨어요? 그래서 위로받고 싶으셨어요?”라며 웃었다. “웃기도 불편하니 그만 좀 웃기시라”며 불어 터진 입술로 말했다. 그날 이후 ‘자괴감’이라는 단어는 노동자들을 만나는 지식인 활동가에게는 사치품처럼 여겨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 정확하게 겹쳐져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무엇으로도 노동자들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노동상담소장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정 농단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괴감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의 몫이다. 6공화국의 헌법을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 모습이 ‘5월 광주’와 ‘6월 항쟁’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 민중이 피땀 흘린 성과들을 모아 여야 정치인들을 통해 국회에서 만들었던 헌법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한참 뒤에나 깨달았다.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의민주주의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낸 ‘간접 행동’의 한계였다.

‘나치’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끝난 독일에서 사회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그 흔적을 철저히 제거하는 데에 큰 공로를 세운 기관이 헌법재판소다. ‘유신’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끝난 한국에서도 같은 취지로 헌법재판소를 도입했지만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합헌 해석에서 보듯 역사를 뒤로 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러려고 민주화운동을 했나’ 하는 자괴감을 느낀 시민들이 지금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광장에는 ‘자괴감’들이 넘쳤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경찰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설치한 천막 지붕에는 “내가 이러려고 미대 나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고 씌어 있었다. 천막들을 차례로 방문하다가 기륭전자 천막을 지키고 앉아 있는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과 마주쳤다. 그 천막의 지붕에도 역시 “내가 이러자고 맥주 마셨나 자괴감이 들고 고통스럽고”라고 씌어 있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별명이 ‘맥주 대통령’인 것에 빗대어 쓴 재치 있는 글이다.

나는 “한때 구고신(최규석 작가의 <송곳> 등장인물)처럼 살았던” 사람이지만 문 소장은 “지금도 구고신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다. 노동자들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건방진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반성하는 활동가다. 그 옆자리 ‘콜트콜텍 천막’에서는 해고 노동자 김경봉씨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어떤 세상이 와도 노동운동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 앞에서 잠시 숙연했다. 지금도 철도노조는 44일째 파업을 진행 중이다.

다시는 또다시 자괴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오는 12일 거리에서 만나자. 수능시험 끝나기만 벼르고 있는 청소년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올 거라는 19일까지 그 열기를 이어가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간접 행동’의 한계는 어차피 ‘직접 행동’ 민주주의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면 그 책임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가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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