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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일요일엔 안 돼요

등록 2016-10-27 18:19수정 2016-10-27 20:21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연극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등의 희곡에서 열연함으로써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유럽의 무대에서 성가를 올리던 그에게 영화 <일요일엔 안 돼요>가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교양 있고 자유분방한 아테네의 창녀와 그리스 문화에 빠진 미국 고전학자 사이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였지만 관객을 자연스레 그리스 문물에 동화시킨다는 이 영화로 메르쿠리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같은 제목의 주제가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히트곡이 되었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각색하여 계모와 수양아들 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페드라>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음악을 맡아 영화에 감동을 더하며 메르쿠리에게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인기의 정상에 있던 배우였지만 1967년 쿠데타에 의해 이른바 ‘대령들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묵과할 수는 없었다. 정변이 일어날 당시 공연 때문에 미국에 있던 메르쿠리는 곧 군사정권에 대한 투쟁에 동참했다. 그는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군부 독재의 부당성을 알리고 그리스의 대령들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 노력했다. 군사정권에서는 메르쿠리의 국적을 박탈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메르쿠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났고, 그리스인으로 죽을 것이다. 그들은 파시스트로 태어났고, 파시스트로 죽을 것이다.” 메르쿠리에게 파시즘은 일요일뿐 아니라 언제나 안 되는 것이었다.

7년 만에 군사정권이 붕괴된 뒤 귀국한 메르쿠리는 1977년에 전국에서 최다 득표를 한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1년부터는 문화부 장관이 되어 영국에 있는 파르테논의 유적을 그리스로 반환하라는 운동에 힘을 실었다. ‘유럽의 문화 수도’라는 제도도 만들어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번갈아가며 한 해마다 그 문화적 업적을 홍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내적 충실과 대외적 화합을 모두 이끈 여성 정치인의 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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