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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칼럼] 박 대통령, 이제 모두 내려놓으시라

등록 2016-10-26 18:03수정 2016-10-26 21:52

정석구
편집인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과 권위를 잃었다. 박근혜 정부도 정상적인 정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그리됐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는 차고 넘치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그는 최순실씨로부터 “일부 연설문 등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함으로써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을 저지른 범법자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범죄자 대통령이 앞으로 무슨 말을 한들 누가 믿겠으며 누가 이를 따르겠는가.

박 대통령 본인의 불행이자 국가 전체의 위기다. 그의 불행이야 자초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위기에 처한 나라는 어찌 될 것인지 걱정이다. 경제, 안보 등 국정 전반이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위중한 시기에 정부마저 제 기능을 못 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박 대통령이 ‘국가와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국가와 국민을 사랑한다면 이제는 자신을 버려야 할 때다.

먼저 할 일은 개헌 방침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개헌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최순실 개헌’으로 불렸다. 이제 개헌 카드로 최순실 게이트를 덮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깨끗이 포기를 선언하고 개헌 논의는 국민과 국회 몫으로 넘겨야 한다.

그다음에 할 일은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을 대폭 개편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 우 수석 하나로 끝낼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대통령이 이 지경이 되도록 잘못 보좌한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참모진 전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대통령 충복들인 국무총리와 장관들로 구성된 지금 정부로는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영향을 받지 않을 중립내각을 새로 구성해 국정 운영의 전권을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해도 마비 상태에 빠진 국정을 추스를 수 있을지 불투명할 만큼 위기 상황이다.

이와는 별개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단지 위법 행위를 한 몇몇 개인을 처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서 국가 시스템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공무원 사회가 일개 자연인 한 명에 의해 이렇게 흔들릴 수 있는지, 어떻게 기업들이 ‘비선 실세’ 한마디에 수백억원의 돈을 갖다 바칠 수 있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검증하는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망가진 국가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작업을 뒷받침하는 진상 조사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진행 중인 검찰 수사로는 어림없다. 특별검사제(특검)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특검만으로도 부족하다. 현행 제도에서는 대통령이 1명의 특별검사를 임명하고, 수사 기간도 제한을 받는 등 실효성 있는 수사를 하기 어렵다.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충분한 수사 인력과 예산, 기간 등이 보장되는 특별수사팀을 꾸려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범법자 몇 명 처벌하는 차원의 통상적인 특검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새누리당도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 대통령을 옹호한 결과가 어떤지를 똑똑히 봐야 한다. “대정부 질문 하나만 하더라도… 친구 얘기도 듣고” 하는 식으로 대통령 변호하기에 급급해서는 미래가 없다. 새누리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이다. 이미 국민한테 버림받은 대통령을 계속 안고 가서는 새누리당도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기 위한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여야 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든 자기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해 국정을 책임지고 끌고 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자신을 붙잡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돼 있다. 더 이상의 미련과 욕심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 남은 임기 동안 정부가 최소한의 기능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그나마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꼼수를 동원해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국민은 박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고 있다. 지금은 일부 국민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박 대통령이 지금 같은 행태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에는 행동으로 나설 것이다. 국민의 인내심도 이제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다다랐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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