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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힐러리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 / 박종현

등록 2016-10-17 18:23수정 2016-10-17 19:02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엄격했고, 어머니에게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소녀는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 속에서 가난은 자기 책임이라고 믿는 어린 공화당원으로 키워졌다. 하지만 이 소녀는 새로 부임한 젊은 목사의 안내 덕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밥 딜런의 음악을 들으며 자유와 연대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강연을 통해 사회참여와 시민운동에 헌신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이 소녀는 30년 후인 1996년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유력한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이야기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했던 칼 번스틴에 따르면, 힐러리는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어린 시절의 가르침에 평생 충실했고, 공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지루하고 계산적이며 특권의식으로 뭉친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으로 비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와 다를 바 없다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연 그런가? 왜 이런 현상이 출현한 것일까?

온라인 기반 뉴스매체 복스닷컴의 에즈라 클라인은 힐러리와 같이 일했던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다. 유쾌하고 따뜻하며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는 게 대부분의 응답이었다. 힐러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준다고 느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클라인은 이를 바탕으로 오바마나 빌 클린턴, 버니 샌더스가 탁월한 언변으로 대중의 사랑을 얻는 정치인이라면, 힐러리는 진지한 경청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끌어당기면서 작더라도 가시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정치인임을 보인다.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남편을 탄핵하고 자신을 마녀 취급했던 공화당 의원들과 화해해 공동입법을 한 것이나, 경선 과정에서 샌더스의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동료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것은 경청하고 관계 맺는 능력 덕분이었다. 힐러리는 시민운동가나 정책전문가들과 함께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줄 진짜 처방을 찾아내고 이를 정책으로 실행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연설에 의존하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드러나지 못했고, 정책에 대한 몰입은 따분하거나 지루한 정치인으로 비쳤다.

힐러리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된 더 큰 이유를 정파적이고 선정적인 언론에서 찾는다. 대학 시절부터 힐러리와 빌의 친구였고 빌 클린턴 내각에서 노동부 장관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던 로버트 라이시도 여기에 동의한다. 힐러리는 지난 삼십년간 우파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고, 그 부정적인 이미지가 언론을 통해 반복 재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창시절 힐러리와 데이트까지 했던 이 ‘평생지기’는 경선 과정에서 샌더스를 지지했다. 이러한 그에게 미국의 공영방송 <피비에스>(PBS)는 50년 전과 오늘의 힐러리가 같은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힐러리는 올바른 일을 하려 했고 대단히 성실했으며 디테일을 완벽하게 장악한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그렇다는 게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보다 부자와 특권층의 권력이 더 커졌고 빈부격차도 심화되었기에 지금은 특권층과 강자에게 과감히 맞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며, 거대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문을 덧붙인다. 싸움보다는 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는 데 능했던 ‘경청의’ 힐러리가 백악관에 입성해 특권층과의 불편한 싸움을 불사하며 ‘평생지기’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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