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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악화하는 안보구조와 종속적 군사국가화

등록 2016-10-12 17:38수정 2016-10-13 09:29

김지석

정부의 핵심 전략은 북한의 굴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의 군사·외교력을 빌려 중국과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군사·안보 측면의 판단이 모든 것에 선행하는 군사국가화 추세가 강해진다. 이는 미국이 짠 틀에 편입되는 종속적 성격을 가지면서 억압적인 국내정책과 상호작용한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군사·외교 공조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15일까지 엿새 동안 한반도 동·서·남 모든 해역에서 계속되는 연합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다. 일본 요코스카가 모항인 미국의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참가 또한 매우 이례적이다. 오는 20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비롯해 양쪽 고위급 당국자의 접촉도 잇따른다.

두 나라의 움직임은 북한과 중국을 함께 겨냥한다.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와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다. 불법 거래 기업에 대한 선별 제재를 넘어 포괄 제재(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간다면 미-중 관계는 크게 나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은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 이후 내부 우려가 크기 때문에 대북 압박 강화를 위해 협력할 동인도, 서두를 이유도 없다’(자칭궈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중국은 미국이 훈련을 빌미로 항공모함 등 전략적 자산을 자신의 땅과 바다에 바짝 접근시키는 것에도 민감하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지 못한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의 근원적 인식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안보 구조는 더 취약해지고 있다. 미-중 갈등 요인이 커지고 한국은 미-일 동맹에 더 기댄다. 중국은 북한 카드를 손에 쥔 채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한다. 이미 전면대결 국면으로 진입한 남북 관계는 이런 신냉전 구도를 강화하는 촉매다. 한반도가 동북아 대결의 최전선이 되고 북한 핵 문제도 더 나빠지는 구조다. 북한이 조만간 새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의 도발을 할 수도 있다. 지금 한·미 당국은 은근히 이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대중국 압박을 위해서다. 그렇다고 기본 구조가 바뀌기는 어렵다.

정부의 핵심 전략은 북한의 전면 굴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의 군사·외교력을 빌려 중국과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군사와 안보 측면의 판단이 모든 것에 선행하는 군사국가화 추세가 강해진다. 이는 미국이 짠 틀에 충실하게 편입되는 종속적 성격을 가지면서 억압적인 국내정책과 상호작용한다.

미국이 오랫동안 추진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던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는 지난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과 한-일 위안부 합의, 올해 북한의 핵실험 등을 거치면서 새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군사력과 외교로 뒷받침하고, 박근혜 정부는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미국으로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던 상황이다.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도 새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사드 문제가 좋은 사례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공세적인 동아시아 전략과 연관되는 ‘미국의 의제’다. 그런데 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식으로 포장하면서 미국이 갑의 입장이 됐다. 미국으로선 한국에 선심을 쓰는 척하면서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됐으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강화되는 한-미 군사훈련도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미국 군사·외교에 대한 의존 강화는 한국의 발언권과 상대적 지위를 갈수록 떨어뜨리고 한반도 문제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군사국가화 추세는 그 자체가 정치적이다. 청와대는 대북 제재·압박 강화를 모든 현안에 앞서는 만병통치약처럼 강조한다. 북한 괴멸을 위한 비현실적 군사 담론이 난무하고 온갖 군사력 증강 방안이 거론된다. 국민 단합을 저해한다며 정부 실정 비판을 매도하는 것은 대외 종속과 내부 탄압이 짝을 이뤘던 과거 군사정권 모습과 판박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에게도 색깔론 공격이 가해진다.

지난주 국방차관 출신 새누리당 의원이 연예인 김제동씨의 군 복무 시절 회상 발언을 문제 삼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부르자고 요구해 논란이 됐다. 여러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해온 그의 입을 막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김씨의 발언 가운데 “균형을 잡는 힘을 갖고 있어야 동북아에서 평화를 이끌 열쇠를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박 대통령은 대북 대화를 한 차례도 제대로 시도해보지 않은 채 “대화에 매달리는 것은 국민들을 위험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선택은 ‘국민을 겁주는 안보’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는 안보’ ‘핵 문제를 악화시키는 안보’다. 지금 정부 행태는 한 연예인의 생각보다 못하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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