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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노동자가 하는 일이 곧 노동조건이다

등록 2016-10-11 18:22수정 2016-10-11 19:26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같이 파업하고 있는 다른 노동조합들 얘기를 꼭 해주세요.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노조는 지금 거의 파업에 ‘올인’하고 있고 참여율도 높은데,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곁에서 걷고 있던 노조 간부 눈에 얼핏 물기가 번졌다. 지금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2012년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벌였던 170일 동안의 파업은 김재철 사장 퇴진이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었다. 노동조합이 제작한 파업 독려 동영상에서 노동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노래 가사로 익살맞게 표현했다. “기웃기웃 김재철! 좀 있으면 선거철! 집에나 가 김재철! 집에 갈 땐 지하철!” 누가 봐도 파업의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원·검찰·노동부가 해온 법 해석에 따르면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은 얼핏 보기에 ‘기업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하는 불법 파업’이라고 볼 가능성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법원은 해고된 문화방송 노동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과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들, 그리고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구속 적부심에서 모두 8번이나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합법적 파업으로 봤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법원·검찰·노동부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요구 사항을 내세우는 파업만 합법적인 활동으로 인정해왔다. 2013년 철도노조의 파업을 정부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파업의 목적이 노동조건 개선이 아니라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 저지였으므로 ‘단체교섭 대상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경망스럽게 표현하면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임금이나 복지가 아니라 감히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을 해?” 그런 시각이다. 그렇지만 철도를 민영화하면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에 엄청난 변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고 노동조합은 당연히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파업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한 법 해석이다.

그렇다면 사장 퇴진을 요구한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을 합법적 활동이라고 본 법원의 해석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방송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임금뿐 아니라 방송 내용 자체 역시 노동조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공정방송 구현을 위한 최고경영자 퇴진 요구는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 말이 백번 맞는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임금과 복지 등에 대한 관심만으로 방송사에 취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똑같은 원리를 병원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환자 곁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노동자들 중에 오로지 임금과 복지 등에 대한 관심만으로 병원에 취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 박경득 분회장이 집회에서 한 발언이 그러한 내용을 놀라울 정도로 잘 요약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병원이 환자의 쾌유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많이 내는 방식으로 일하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 국민이 질병으로 더 많은 돈을 쓰고 그래서 병원이 더 많은 수익을 내면 그 수익으로 더 많은 성과급을 주겠다고 우리에게 얘기했습니다. 그 성과급을 포기하고 정부의 불의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기 위해” 파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또박또박 외치는 동영상을 보며 눈물이 나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토씨 하나까지 모두 자로 잰 듯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리돼 나오는 말들을 보며, 나는 밤새 원고를 쓰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외웠을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날 그 집회에서 자신의 발언 순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있다가 뒤늦게 연락을 받고 급히 대학로 집회 장소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정리한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공병원의 노동자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 파업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칼럼에 쓰겠다고 했을 때, 한 노조 간부 간호사가 말했다. “같이 파업하고 있는 다른 노동조합들 얘기를 꼭 해주세요.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노조는 지금 거의 파업에 ‘올인’하고 있고 참여율도 높은데,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곁에서 걷고 있던 노조 간부 눈에 얼핏 물기가 번졌다. 지금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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