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카를로 긴츠부르그는 명성 높은 이탈리아 역사가다. 우리에게 한동안 그의 이름은 ‘진즈부르그’였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래어 표기법 때문이다. 이탈리아 학자들은 그를 ‘긴츠부르그’로 발음하며, 고유명사 발음에는 예외가 있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책 <베난단티>를 번역하며 직접 그에게 문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자신의 이름은 ‘긴’으로 발음하며 한국에서 잘못 알려져 있음을 알고 있으니 이참에 제대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생존 인물은 이렇게 바로잡는 것이 가능하지만, 역사 속 인물 이름을 수정하는 일은 더 어렵다. ‘캘빈’이라 쓴 이름은 여지없이 ‘칼뱅’으로 바뀐다. 외국인명이나 지명은 출신 국가의 발음을 따르는데, 그는 프랑스 사람이라서 그렇단다. 그러나 그의 프랑스 이름은 ‘코뱅’이며, 라틴어가 공용어이던 시절 라틴어화된 이름 ‘칼비누스’를 영어화한 것이 ‘캘빈’이니 그것을 다시 ‘칼뱅’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인문학자 헤르트 헤르츠의 라틴어 세례명 ‘에라스무스’도 그가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이유로 ‘에라스뮈스’라고 표기하나 그럴 필요가 없다. 중세 말기의 학자 ‘보에티우스’는 ‘보이티우스’가 표준어로 되어 있다. 라틴어의 중모음 ‘oe’가 ‘오이’로 발음되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전을 보면 ‘보에티우스’의 ‘oe’는 중모음이 아니다. o와 e 사이에서 음절이 끊긴다. 그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Bo?tius라고 친절하게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니 앞으론 ‘보에티우스’로 정착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어에서 z는 ‘ㅈ’으로 발음되고 zz는 ‘ㅉ’으로 발음된다.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가 ‘로렌조’로, 수상도시 ‘베네치아’가 ‘베네지아’로 바뀔 수 있을까? 한글의 장점 중 하나는 경음을 표기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에서 경음 사용을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세종대왕의 선물을 우리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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