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헨드릭 페르부르트는 네덜란드에서 남아프리카로 이주해 타지 출신으로 총리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한 가장 잔혹한 범죄로 꼽히는 극단적 인종차별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여러 학문에 재능을 보여 독일 유학을 다녀온 뒤 26살에 대학교수가 되어 학자로 명성을 높인 그는 신문의 편집장을 맡은 뒤 마침내 총리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정치적 성향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보어 전쟁에서 네덜란드가 패한 뒤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남아프리카에 살던 네덜란드 이주민인 보어 인들에게 연민을 느껴 이주를 결행했던 것이다. 페르부르트는 아프리카인들의 독립적인 정치 체제를 이룩하기 원했고, 그러한 그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 마침내 남아프리카는 1960년에 영연방에서 벗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되었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아프리카인들이란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백인들만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있었다. 자신들만의 독립을 원하나 그것을 위해선 흑인을 차별해야 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내부의 여러 시행 세칙에 의해 유지되지만, 본질적으로 그 특징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법치’이다. 흑인에 대한 여러 종류의 억압과 차별이 법의 이름으로 집행된다. 저항하는 단체는 불법으로 규정한다. 두 번째로 비밀경찰과 군대라는 ‘공권력’의 도움을 받는다. 페르부르트를 살해하려는 두 번의 시도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두 번 모두 범인은 정신 질환을 앓던 백인이었다. 1960년의 위기는 넘겼으나 목과 가슴에 얻은 1966년의 자상은 치명적이었다. 사망 이후 병원, 공항, 댐 등 공공장소에 그의 이름이 붙었으나, 인종차별이 폐지된 1994년 이후 모두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그의 사망 소식에 환호를 보냈다. 조의가 아닌 환호를 받을 마감은 실패한 삶의 증거다. 그런 삶은 이곳에도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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