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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잔인함의 네 단계

등록 2016-09-22 18:31수정 2016-09-22 20:44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윌리엄 호가스는 18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당대 영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그림이나 판화를 많이 남겼다. 아버지가 빚에 몰려 감옥살이를 했을 정도로 넉넉지 못한 집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적부터 런던의 뒷골목과 시장터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세상 물정을 관찰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 그는 마주친 사람들의 스케치를 즐겨 그렸다. 이런 경험이 그가 풍자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밑바탕이 되었다.

그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났던 민관 합작의 거대한 사기 사건으로, 이 칼럼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 뉴턴과 같은 석학까지도 큰 피해를 입은 ‘남해 회사 버블’ 사건을 조롱하는 그림도 그렸다. 모든 종파의 사람들이 노름을 하며, 단지 주식을 남발하는 것밖에 하는 일이 없는 남해 회사의 주식을 사려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어리석음을 과시한다. 복권, 연극 무대, 오페라, 가면무도회 등 인간 군상의 허영과 탐욕이 개재된 것들은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단지 비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교훈을 전달하려 했다. 교훈을 전달하려면 스토리라인이 필요했기에 그의 판화에는 연작이 많다. 그중에 <잔인함의 네 단계>라는 4부작이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주인공인 어린 톰 네로는 개의 항문에 꼬챙이를 쑤셔 박는 등 고문을 가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 성년이 된 네로는 마부가 되어 말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학대와 과로로 쇠진한 말이 쓰러져 마차도 무너진다. 세 번째 단계인 “완벽한 잔인함”에서 네로는 어린 하녀를 유혹해 주인을 떠나게 만들고는 임신시킨 뒤 도둑질을 사주하고 결국은 살해한다. 마지막 단계인 “보복된 잔인함”에서 살인범으로 유죄가 확정된 네로는 교수대에서 처형당하며 그의 시체는 수습 의사들의 실습용으로 해부된다.

휴가철이 끝날 때마다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가 늘어난다고 한다. 호가스의 교훈이 경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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