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비난하는 건 쉽다. 협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위기의 일상화와 군사대결뿐이다. 중국 책임론이 아니라 ‘미국·한국 무한책임론’이 정답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북한은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는데, 마침 그때마다 논설위원실에서 그 문제를 담당했다. 핵실험 전후의 상황만 살펴봐도 북한 핵 문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빠져왔는지를 알 수 있다. 1차 핵실험은 2006년 10월9일 이뤄졌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한국과 미국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대화 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의 핵실험도 협상용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핵실험의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난 것은 1기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출범한 지 넉달가량 지난 2차 때다(2009년 5월25일). 장거리 로켓 발사, 핵 불능화 작업 중단, 폐연료봉 재처리 재개 등이 시도됐고, 이런 벼랑 끝 전술의 정점이 핵실험이었다. 2013년 2월12일의 3차 핵실험은 2차의 속편이다. 2기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했거나 출범을 앞둔 때인데다 벼랑 끝 전술도 되풀이됐다. 올해 1월6일과 9월9일의 4·5차 핵실험은 앞선 세 차례와 패턴을 달리한다. 우선 예고가 전혀 없었다. 국제사회의 눈이나 외교보다는 ‘실전적 핵 능력 확보’라는 자신의 계획 강행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8개월 만에 다시 핵실험을 하고 그사이에 수십발의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조급함마저 보여준다. 4·5차는 협상용이라기보다 핵보유국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김정은 정권은 집권 몇개월 만인 2012년 봄에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해서 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종합적 국력이 뒷받침되고 다른 나라가 인정해주지 않는 한 핵무기가 국제 영향력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북한은 앞으로도 동북아에서 가장 약소국일 뿐이다. 철저한 파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쓸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집요하게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해서다. 곧 북한의 핵무기는 영향력 확대와 번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파멸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핵무기가 없을 경우 체제를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핵 개발로 체제에 큰 손상이 가더라도 핵무기를 갖는 것이 북한으로선 최선의 선택이 된다. 3차 핵실험 이후 더 뚜렷해진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 정권이 느끼는 불안감을 반영한다.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것이 내부 불안의 극적인 표현이었다면 연이은 핵 능력 과시는 외부에서 오는 불안을 막아주는 차단벽이다. 북한이 보기에 그 불안은 대부분 미국과 한국에서 온다. 북한의 핵 역량이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협상이 작동할 때엔 핵 개발이 중단되거나 속도가 떨어졌고 협상이 끊기면 예외 없이 속도가 빨라졌다. 1차 핵실험 이후 핵 개발은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2008년 6월에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이 폭파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곧 협상 틀이 깨지고 6자회담은 긴 동면에 들어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은 3차 핵실험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한계를 드러낸 상태였다. 그 뒤 지금까지 북한은 핵 개발 속도를 부쩍 높였다. 오바마 정부는 자신의 강경 대북정책 기조를 ‘전략적 인내’라고 했는데, 이는 박근혜·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발맞춘 것이기도 하다. 이 정책이 유효하려면 북한이 알아서 굴복하거나 체제가 무너져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북한이 그렇게 되도록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비난하는 건 쉽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협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위기의 일상화와 군사대결뿐이다. 협상론과 관련해 최근 나온 미국외교협회 특별보고서는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보고서는 초기 단계 협상에서 핵 능력 동결을 검증하는 데 집중하고 이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의 포괄적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미국과 한국이 협상에 충분한 힘을 싣는다면 북한도 따라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한국이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노력하는 태도다. 중국 책임론이 아니라 ‘미국·한국 무한책임론’이 정답이다. jkim@hani.co.kr
논설위원 북한은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는데, 마침 그때마다 논설위원실에서 그 문제를 담당했다. 핵실험 전후의 상황만 살펴봐도 북한 핵 문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빠져왔는지를 알 수 있다. 1차 핵실험은 2006년 10월9일 이뤄졌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한국과 미국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대화 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의 핵실험도 협상용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핵실험의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난 것은 1기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출범한 지 넉달가량 지난 2차 때다(2009년 5월25일). 장거리 로켓 발사, 핵 불능화 작업 중단, 폐연료봉 재처리 재개 등이 시도됐고, 이런 벼랑 끝 전술의 정점이 핵실험이었다. 2013년 2월12일의 3차 핵실험은 2차의 속편이다. 2기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했거나 출범을 앞둔 때인데다 벼랑 끝 전술도 되풀이됐다. 올해 1월6일과 9월9일의 4·5차 핵실험은 앞선 세 차례와 패턴을 달리한다. 우선 예고가 전혀 없었다. 국제사회의 눈이나 외교보다는 ‘실전적 핵 능력 확보’라는 자신의 계획 강행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8개월 만에 다시 핵실험을 하고 그사이에 수십발의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조급함마저 보여준다. 4·5차는 협상용이라기보다 핵보유국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김정은 정권은 집권 몇개월 만인 2012년 봄에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해서 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종합적 국력이 뒷받침되고 다른 나라가 인정해주지 않는 한 핵무기가 국제 영향력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북한은 앞으로도 동북아에서 가장 약소국일 뿐이다. 철저한 파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쓸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집요하게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해서다. 곧 북한의 핵무기는 영향력 확대와 번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파멸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핵무기가 없을 경우 체제를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핵 개발로 체제에 큰 손상이 가더라도 핵무기를 갖는 것이 북한으로선 최선의 선택이 된다. 3차 핵실험 이후 더 뚜렷해진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 정권이 느끼는 불안감을 반영한다.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것이 내부 불안의 극적인 표현이었다면 연이은 핵 능력 과시는 외부에서 오는 불안을 막아주는 차단벽이다. 북한이 보기에 그 불안은 대부분 미국과 한국에서 온다. 북한의 핵 역량이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협상이 작동할 때엔 핵 개발이 중단되거나 속도가 떨어졌고 협상이 끊기면 예외 없이 속도가 빨라졌다. 1차 핵실험 이후 핵 개발은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2008년 6월에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이 폭파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곧 협상 틀이 깨지고 6자회담은 긴 동면에 들어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은 3차 핵실험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한계를 드러낸 상태였다. 그 뒤 지금까지 북한은 핵 개발 속도를 부쩍 높였다. 오바마 정부는 자신의 강경 대북정책 기조를 ‘전략적 인내’라고 했는데, 이는 박근혜·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발맞춘 것이기도 하다. 이 정책이 유효하려면 북한이 알아서 굴복하거나 체제가 무너져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북한이 그렇게 되도록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비난하는 건 쉽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협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위기의 일상화와 군사대결뿐이다. 협상론과 관련해 최근 나온 미국외교협회 특별보고서는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보고서는 초기 단계 협상에서 핵 능력 동결을 검증하는 데 집중하고 이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의 포괄적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미국과 한국이 협상에 충분한 힘을 싣는다면 북한도 따라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한국이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노력하는 태도다. 중국 책임론이 아니라 ‘미국·한국 무한책임론’이 정답이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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