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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

등록 2016-08-30 17:38수정 2016-08-30 19:46

조한혜정

대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근대의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1차 근대의 언어에서 확실하게 벗어나라고. 출산율을 높이자거나 임대주택 줄 테니 애 낳으라거나 청년수당 줄 테니 일자리 찾아보라고도 하지 말라고.

정부는 여전히 저출산 관련 지엽적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난임 치료, 남성 육아휴직 수당, 세 자녀 출산 인센티브 등을 긴급 보완책으로 내놓아서 빈축을 샀다. 문제의 근본은 고용 불안, 주거비·교육비 부담인데 정부만 모르는 듯하다는 여론의 소리가 높다. 이 가운데 저출산 대책 기사에는 많은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중에는 이런 글이 있다. “동물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환경에서 스스로 번식을 억제한다.”(acto****) 위협받는 환경을 감지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통찰력 있는 청년들에게 푼돈을 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고 아이를 낳겠는가? 지금은 실은 출산율이 낮아야 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저출산 현상은 일정한 경제발전을 이룬 단계에서 일어나는 ‘선진국 현상’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오치아이 에미코 교수는 출산율 감소 현상을 두고 근대를 두 단계로 나누는데, 1차 근대는 2.0명 수준으로 출산율이 감소하는 시기다. 전통적 3대 가족에서 해방된 젊은 부부가 때마침 나온 피임술을 통해 자녀를 둘만 낳아 단란한 핵가족을 이루는 시기다. 도시화와 핵가족과 전업주부화가 진행된 고도성장기의 풍경이기도 하다. 2차 근대는 출산율이 1.5명 이하로 떨어져 사회의 고령화를 유발하는 감소기다. 선진국형 청년 실업과 맞벌이 부부가 보편화되는 저성장기의 현상이다. 서구에서는 비혼, 미혼모, 동거가족과 공동체 같은 다양한 주거공동체 형태가 사회적 인정을 받는 한편 이주민 포용 등 다원적 복지 사회로 전환해냄으로써 1.5 정도의 출산율을 유지하게 된다.

한국은 이 과정을 매우 압축적으로 거치느라 혼란을 겪고 있다. 서구 선진국이 1차 출산율 감소를 1880~1930년대에, 2차 출산율 감소를 1960년대 말에 거치면서 약 50년 동안 친아동적 사회를 만들어갔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1970~80년대에 ‘성공적으로’ 1차 출산율 감소기를 거친다. 무료 불임수술과 정관수술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 국가와 국민 모두가 바라던 바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2차 출산율 감소기로 들어섰다. 정책 입안자들은 출산 억제책을 쓰던 발상으로 출산 장려책을 펼치며 출산율을 올리려 하는데 통할 리가 없다. 일단 아이 둘을 낳고 수술을 해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것과 아이를 (안) 낳기로 하는 결단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2차 근대는 1차 근대처럼 “자기 먹을 것 타고나는” 시대가 아니다. 아이가 독립할 나이까지 부양할 자신이 없으면 낳을 수가 없다. 3년의 무상보육, 10만원의 아동수당, 부성휴가 등의 수준에서 논의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2차 근대는 노동력으로 ‘부’를 일으킨 1차 근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성장 고위험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가 국가/사회에 평생 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례로 저체중아 비율이 10년 사이에 2배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효율 고비용 입시교육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나 제대로 키우자.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이 노동력을 대체한다면서 왜 청년들에게 기존 일자리를 잡으라고 윽박지르고 결혼도 못 하는데 아이를 낳으라 하는가? 노동중독증에 걸린, 재산권 신수설을 신봉하는 1차 근대의 언어는 이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그래서 다음 대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일찌감치 당부하고 싶다. 근대의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1차 근대의 언어에서 확실하게 벗어나라고 말이다. 출산율을 높이자거나 임대주택을 줄 테니 애 낳으라거나 청년수당을 줄 테니 일자리를 찾아보라고도 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은 피폐해진 자신을 보호할 때이고 온기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부양할 때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청년들이 이민을 가지 않고 머물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희망을 품고 즐겁게 작당하면서 새로운 일자리와 일거리를 만들고 지구를 덜 망치면서 살아갈 시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토건과 사기의 달인이 판치는 세상을 돌봄의 달인들이 바꾸어낼 수 있게 자원분배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일/돈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세대의 경계를 넘어 만들어내는 상호부조의 토양에서 2차 근대를 이끌어갈 창의적이고 호혜적인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을 것이고 출산율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아이 낳기를 결단하는 것은 결국 여자들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새겨두길!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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