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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다정도 병

등록 2016-08-25 19:11수정 2016-08-25 19:54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펄 벅은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중국 농촌의 삶에 대해 풍요롭고도 진정 서사적인 묘사”를 “자전적인 걸작” 속에 녹여냈다는 것이 노벨상 수여의 이유였다. 확실히 그것은 벅의 삶과 문학 모두를 적절히 고려한 평가였다. 부유한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어릴 적부터 중국에서 살았던 벅의 경험은 <대지>를 비롯한 그의 소설에 반영되어 1930년대 미국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1935년 귀국한 뒤 벅은 왕성하게 문필 생활을 하는 한편 여성과 소수 집단의 권리를 옹호하는 행동에 나섰다. 그가 특히 중점을 둔 일은 글로 아시아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아시아 여성과의 교류를 강화하며 아시아계나 혼혈의 어린이를 입양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세태에선 생각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 시절엔 입양기관마저 백인 가정에서 그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벅은 분노했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그는 소설가 제임스 미치너, 음악인 오스카 해머스타인과 함께 ‘웰컴’이라는 입양기관을 설립했다. 더 나아가 입양 부적격 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펄 벅 재단’도 만들어 한국에 사무소를 만들고 점차 타이, 필리핀, 베트남으로 확대시켰다. 사실 그는 시대에 앞서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확고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벅의 삶에도 ‘옥에 티’는 있다. 남편이 사망한 뒤 벅은 시어도어 해리스라는 전직 무용 교사를 알게 되며 곧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에게 ‘웰컴’과 ‘펄 벅 재단’의 운영까지 맡겼다. 그렇지만 해리스는 많은 추문을 남겼다. 그는 재단 운영에 실패했고 공금을 횡령했으며, 게다가 위탁된 한국 출신 남자 어린이들에게 성추행을 가했다는 혐의까지 더해졌다. 그 모두를 뜬소문으로 여긴 벅은 죽으면서도 해리스를 신뢰해 소설의 해외 판권까지 그에게 넘겼다. 다정도 병이다.

다만 이곳 누군가의 병이 훨씬 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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