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의 핵심은 ‘금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합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에 있다. 교회가 문을 닫거나 목사가 잡혀갈 때는 히틀러의 나치처럼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불의에 저항할 때였다. 이게 다 차별금지법이 없던 시대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새누리당 이혜훈 국회의원이 요즘 바쁘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행사마다 그의 이름이 보인다. 얼마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이 의원은 ‘차별금지법에 대응하는 학부모들의 자세’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국내 에이즈 환자의 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지원하는데, 조 단위의 천문학적 금액이 사용”되고 있다며 “에이즈와 동성애를 확산시키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가에서 지원하는 에이즈 환자 치료비는 1년에 20억원이 조금 넘는다. 서류 한두 장만 넘겨보면 알 수 있는데 왜 수조원에 달한다는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또 다른 강연에서 이 의원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회는 불법단체가 되고 목회자는 구속될 수도 있으니 이 법을 꼭 막아야 한다”고 했다. 유언비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만들어진 뒤 목회자가 구속되고 기독교 신도가 줄어들었다는 등의 잘못된 소문을 인용한 듯하다. 1956년 정·부 대통령 선거 때 천주교 신자인 장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천주교는 교황의 명령에 따르는 체계이므로 천주교인이 부통령이 되면 나라를 바티칸에 팔아넘긴다는 소문이 돈 것과 비슷하다. 1960년 미국에서 존 F. 케네디가 천주교인으로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때도 유사한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바티칸의 속국이 되지 않았다. 무조건 반대하기 이전에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엔 의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유언비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혜훈 의원을 비롯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핵심 하나를 놓치고 있다. 모든 차별금지법에 반드시 앞에 붙는 단서 조항, 바로 ‘합리적 이유 없이’라는 구절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는 사례는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한 목사가 동성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거부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언뜻 보면 신앙심을 지키려고 한 목사님이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정보가 빠졌다. 그 목사가 운영하던 곳은 교회가 아니라 웨딩 업체였다.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면 안 된다. 백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흑인을 출입하지 못하게 한 상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애초에 종교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 및 판매와 관련된 문제였다는 얘기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목사가 본인의 의지와 종교적 신념에 반함에도 억지로 동성 커플의 주례를 서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사는 웨딩 업체를 종교 법인으로 전환했다. 만약 일제 강점기에 어느 조선인이 식당을 운영하면서 “일본인과 개 출입금지”라고 공지를 붙인다면 차별일까 아닐까. 혹은 일본인이 “조선인과 개 출입금지”라고 했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저항 혹은 기개 넘치는 행동에 해당되고 후자는 차별이자 비하 행위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한국의 어떤 식당에서 광복절마다 ‘일본인 출입’을 거부한다면 이는 차별일까? 나는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로 토론을 해보면 된다. 현실에서 강자와 약자는 쉽게 구별되지도 않고 또 그 위치는 계속 바뀌기도 한다. 평범한 한 명의 시민이 밥을 먹고, 옷을 사고, 살 집을 구하거나 하는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서비스 제공을 거부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합리성이지 않을까.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금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합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에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심하게 박해받았던 때는 로마 제국이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힌다며 기독교인을 체포해서 고문하고 사자 밥으로 내던질 때였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는 황제이든 귀족이든 노예든 평등하며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고귀한 존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교회가 문을 닫거나 목사가 잡혀갈 때는 히틀러의 나치처럼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불의에 저항할 때였다. 이게 다 차별금지법이 없던 시대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엇이 합리적인지, 합리적이지 않은지 논의할 수 없던 시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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