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로저 에커치는 산업혁명 이전 구미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밤’에 관한 모든 것을 책으로 펴냈다. 그것은 밤의 위험과 그에 대한 방비책, 밤의 망상이나 악몽, 밤의 놀이, 불면증 등등 밤에 관한 일종의 ‘잡학 사전’이었다. 그는 “인간 역사의 절반은 전반적으로 무시되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그 공백을 메웠다고 언명했다. 나는 이 책을 <밤의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8년 전쯤의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내고 싶다고 한 출판사에서 기별이 왔다. 웬일인가 알아보니 그사이에 에커치는 전 세계적인 명사가 되어 있었다. 역사가 버나드 베일린,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 같은 석학의 상찬은 물론 세계 도처의 유수한 언론 매체에서 그 책에 귀중한 지면을 할애한 것까지는 알았는데, 그것을 넘어섰다.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방송에 출연하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진행자 역할까지 맡았다. 궁금했던 그 이유를 알고 나서는 역사 전공자의 편협한 고정관념을 자책하게 되었다. 그가 고증한바, 먼 옛날 사람들이 잠을 두 번 잤다는 사실은 내게 단지 흥미로운 일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통찰을 이끌어낸 것이다. 웰빙을 강조하는 오늘날 숙면의 중요성은 국가나 기업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숙면의 조건을 찾으려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줄기 빛이었다.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자는 방식에 일정한 유형이 있음을 확인한다면 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라운 대학교 의대의 한 교수는 “잠과 관련된 전통적 가설에 대한 새로운 공격이 제약회사나 대학연구소가 아니라 한 역사가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영국과 일본의 정부에서는 그의 연구를 숙면을 위한 국가적 지침으로 받아들였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이런 책까지 참고하는 그들 정부를 보는 부러움이란…. 이 책은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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