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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새로운 입자’를 기다리는 사람들

등록 2016-07-21 18:01수정 2016-07-22 11:23

오철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 충돌기(LHC)에서, 힉스 입자에 이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기본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신호가 포착됐다는 발표가 나온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이런 소식은 당시에 주목을 받았지만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신호가 가리키는 입자가 무엇인지 그 정체는 규명되지 못한 채 후속 데이터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 그 결과가 8월에 발표될 모양이다.

입자물리학의 표준이론에서 계산된 예측을 벗어나, 전에 없던 새 입자가 발견된 걸까? 8월 발표를 앞두고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뚜껑도 안 열렸는데 벌써 새로운 입자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여러 추측의 글들이 나오고 있다.

이 거대한 입자 충돌 장치는 100m 지하에 있는 27㎞ 길이의 원형 터널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쏜 양성자 빔을 거의 빛 속도로 가속하다가 충돌시킨다. 이때 양성자 입자가 쪼개지면서 갖가지 입자 신호가 생성되는데, 충돌 에너지가 클수록 고에너지 상태에서나 존재하는 입자의 신호가 포착된다. 2012년 힉스 신호는 8TeV(테라전자볼트)의 충돌 에너지에서 검출됐는데, 성능을 높인 지금 충돌기는 무려 13TeV의 에너지를 구현한다. 그러니 전엔 볼 수 없던 고에너지 입자도 검출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높았다. 덩달아 물리학 표준모형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기본입자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커졌다.

독특한 신호의 정체는 대체 무얼까? 물리학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먼저, 그 신호는 또다른 힉스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2012년 발견돼 노벨물리학상을 안긴 힉스 입자는 ‘가벼운’ 힉스(125GeV, 기가전자볼트)였으며 이번에 검출된 신호(750GeV)는 ‘무거운’ 힉스 종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가능성으론, 표준이론에서 실체로서 다뤄지지 않은 가설적인 입자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표준모형은 위협받고 그 이론체계는 개편되고 다듬어져야만 한다. 만일 그렇다면 새로운 입자 발견은 중력파 첫 검출에 버금가는 큰 뉴스가 될 것이다. 마지막의 허탈한 가능성으로, 유별난 신호 검출은 그저 우연에 우연이 겹쳐 생긴 잡음 해프닝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세 갈래 가능성 중에 새로운 입자의 출현에 더 큰 기대를 내비치는 듯하다. 왜 이들은 전에 없던 입자에 설레는 기대를 나타내는 걸까? 현 이론체계를 위협하고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힉스 발견 선언이 있기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해당 신호가 힉스인지 아닌지를 두고 추측과 기대가 오갔다. 당시 한 물리학자는 ‘어쩌면 표준이론이 예측하는 힉스가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입자로 판명될 때 물리학은 오히려 더 크게 발전할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리학의 집단지성으로 쌓은 지식체계가 지금의 표준모형이라지만, 여전히 그 이론의 틀에서 다 설명되지 않는 힘과 입자, 우주론의 물음이 있기에 새로운 입자의 출현이 새로운 발견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던 듯하다. 발견은 이전 지식에서 많은 것을 바꾸겠지만 자연을 보는 다른 눈을 줄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과학 하는 이들이 기꺼이 반기는 ‘과학 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신호의 정체는 발표 전까지 짐작하기 어렵다. 연구진 사이엔 발표 전까지 일체의 정보를 밖에 흘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기에 8월 발표의 향방은 예측하기 힘들다. 지금도 발표를 준비하는 이들의 작업은 분주하리라. 발표가 허탈한 결과를 전할지라도, 갖가지 기대를 쏟아내는 지금의 모습은 그 자체로 ‘과학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삶과행복팀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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