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아, 로베르토 클레멘테

등록 2016-07-07 18:14수정 2016-07-07 20:2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야구선수로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보냈다. 18년을 메이저리그에서 보내는 동안 그는 수위 타자를 네 차례나 했고, 12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1971년에는 월드 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그는 중남미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과정에는 비화가 숨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선수는 은퇴하고 5년이 지나야 명예의 전당에 등재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비운의 죽음을 맞은 클레멘테를 위해 사망하고 6개월이 지나면 자격이 부여된다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그를 위해 특별 조치가 취해진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은 삶의 행적을 이어받으며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클레멘테는 야구 시즌이 끝나면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그는 조국 푸에르토리코를 넘어 중남미 여러 곳에서 야구 장비를 지원해주고, 필요하면 식량까지 제공하며 청소년들의 꿈을 키웠다.

1972년 12월23일 니카라과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3주 전 니카라과를 방문했던 클레멘테는 곧 구호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이미 세 차례 비행기로 보낸 구호물자가 부패한 소모사 정권의 관리들에 의해 착복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네 번째의 비행기에 탑승했다. 자신이 타고 가면 물자가 이재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정비 불량의 전적이 있던, 조종사가 미숙했던, 적재량도 크게 초과했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탑승을 만류했던, 스스로도 위험함을 알고 있던 그 비행기에 그는 올랐다. 12월31일 비행기는 뜨자마자 푸에르토리코의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장례식에 절친한 동료 선수 하나만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그는 회수되지 못한 그의 시체를 찾으려고 비행기가 침몰한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 청문회’ 증언, 모두 윤석열을 가리킨다 [1월23일 뉴스뷰리핑] 1.

‘내란 청문회’ 증언, 모두 윤석열을 가리킨다 [1월23일 뉴스뷰리핑]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2.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3.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4.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트랜스젠더 혐오’ 트럼프 속내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5.

‘트랜스젠더 혐오’ 트럼프 속내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