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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브렉시트와 한반도 안보

등록 2016-07-04 17:00수정 2016-07-04 19:26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미국의 안보 우선순위가 유럽 쪽으로 이동하면서, 아시아 중시 정책도 자연스레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태평양 쪽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옅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한·미·일 안보협력과 한·미 동맹을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안보 체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세계는 더욱 좁아졌고, 상호 연관성은 더욱 커졌다. 세계화의 효과다. 비행기로 12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세계화의 축지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이곳 한국에서의 관심은 금융과 무역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 하는 경제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만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브렉시트가 몰고 올 한반도 안보 상황의 변화다. 경제는 직접적이고 가시적이지만 안보는 간접적이고 비가시적이어서 일반인들의 눈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마저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은 무능하거나 나태한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 경제 쪽만 부산하고 외교·안보 쪽은 이상하리만큼 잠잠하다. 외교·안보 쪽의 ‘사려 깊은 정중동’이라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브렉시트 이후인 6월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상황을 경제와 안보의 이중 위기라고 규정했다. 거기까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 진단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브렉시트와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거론하며 전자는 경제위기를, 후자는 안보위기를 각기 가중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브렉시트와 안보위기를 연결하는 통찰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면서 과정은 틀리고 답만 맞힌 것 같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 브렉시트와 한반도 안보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그 연관성을 알기 위해선 미국의 세계 차원의 안보정책과 한반도 안보의 구조를 함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세계 안보정책은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서양동맹과 일본을 축으로 하는 태평양동맹을 두 기둥으로 삼고 있다. 한반도 안보는 한·미 동맹이 핵심인데, 한·미 동맹은 태평양동맹의 틀 안에서 작동하게 되어 있다. 거칠게 말하면 대서양동맹은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고, 태평양동맹은 팽창하는 중국을 억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우리 처지에서는 중국보다 북한이 긴급한 억제 대상이지만, 태평양동맹의 양대 세력인 미국과 일본은 북한보다는 중국을 근본적인 위협으로 본다. 북한을 앞장세우더라도 항상 그들의 시선은 그 너머 중국에 닿아 있다.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을 강화하려는 미·일과,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만 안보협력을 한정하려는 한국 사이의 샅바 싸움은 이런 구조에서 나온다.

마침 6월 중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간부들과 함께 하와이에 있는 미 태평양사령부와 공군·해군 기지 등을 두루 방문하며 아시아·태평양 속의 한반도 안보 구조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스텔스 전투기와 고성능 함정 등으로 이뤄진 미군의 막강한 군사력이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억지하는 뒷심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 쪽의 엄청난 용기와 결단 없이는 미·일 중심의 태평양 안보 틀에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또 인도까지 포함해 중국을 포위·견제하는 군사망이 착착 짜지고 있다는 것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브렉시트로 미국 세계전략의 한 축인 대서양동맹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미국으로선 당장 브렉시트로 인한 대서양 안보의 공백을 메우고 영국을 대체할 유럽의 파트너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 미국의 안보 우선순위가 유럽 쪽으로 이동하면서, 2011년 이후 아시아 쪽으로 군사력을 재배치했던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도 자연스레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태평양 쪽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옅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한·미·일 안보협력과 한·미 동맹을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안보 체제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을 비롯한 미사일·핵 전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의 예에서 보듯 한·미 동맹을 보는 미국의 토양도 바뀌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세계 차원의 안보환경 변화, 한·미 동맹을 바라보는 미국 내 분위기의 변화, 상시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삼각 파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이것이 브렉시트 이후 우리에게 새롭게 던져진 안보 과제이다.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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