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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포퓰리즘 전성시대? / 박권일

등록 2016-06-30 18:07수정 2016-06-30 19:17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브렉시트 사태에서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건 ‘무지한 영국 노인’ 서사다. 수많은 영국인들, 특히 장노년층이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는데, 막상 결과가 나오자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그제야 ‘EU란 무엇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는 풍문 말이다. “우리가 뭔 짓을 한 거지?”(What we have done?)라는 자조적 해시태그가 여러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서사에 담긴 의미는 명료하다. 첫째, 영국은 유럽연합에 잔류했어야 한다. 둘째, 영국 기성세대는 이기적이거나 멍청하다. 셋째, 그래서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선동당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됐다.

저 서사는 현실의 일면이지만 사태를 저렇게 축약해버리는 건 적절치 않다. 아니, 브렉시트를 이해하는 최악의 방식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투표에 앞서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영국 사회의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과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오랜 역사를 거치며 형성된 것이다. 영국의 유권자들은 각자의 정보와 판단에 따라 표를 던졌다. ‘우매한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선동당해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타인의 주체적 권리행사에 대한 모욕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냉소를 부추길 따름이다.

오히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나이든 세대가 현상유지가 아닌 변화를 택했다는 점이다. 정당정치가 어느 곳보다 발달한 영국에서, 정당이라는 매개가 아닌 국민의 직접투표로 사회의 진로를 결정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대처 총리 이래 30년 넘게 지속되어온 영국의 신자유주의는 보수당과 노동당이라는 양당 체제를 사실상 하나의 깃발 아래 묶어세웠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을 표방했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백기투항임이 머지않아 밝혀졌다. 노동당의 기층을 이루는 북부의 노동자들 상당수는 영국의 급격한 금융자본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잉여계급’이 됐다. 남부의 젊은 금융산업 종사자들과 북부의 전통적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노동당원이라는 것 외에 어떤 동질성도 찾기 힘들어졌다. 팔팔한 20대 청년이 환갑이 되는 세월 동안, 메우기 힘든 거대한 균열이 영국 사회에 생겨났다. 이번 브렉시트 사태는 그 심연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슬쩍 보여준 셈이다.

정치철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적 이성>에서 포퓰리즘에 대한 협소하고 부정적인 통념을 일축하며 그것이 어떤 특정한 이념이 아니라 ‘현대 정치가 작동하는 형식’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즉 포퓰리즘은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흔히 ‘제3세계적 현상’이라 치부되던 포퓰리즘 정치는 오늘날 ‘제1세계’ 국가에도 넘실댄다. 미국의 대선후보 경쟁에 나선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 비전, 품격, 스타일에서 매우 대조적인 인물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주류 정치 엘리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지지를 얻는 데엔 각자의 매력과 설득력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기성 엘리트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환멸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하나는 변화를 추동하는 ‘해방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적으로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적 차원’이다. 호소력을 지닌 지도자가 나타나 좌절한 대중의 요구를 정치적 언어로 수렴할 수 있을 때, 정치는 기능적 차원에서 해방적 차원으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더 많은 장벽을 요구하는 극우주의일 수도 있고,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는 사회주의일 수도 있다. 우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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