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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능소화

등록 2016-06-21 09:25수정 2016-06-21 09:56

장미의 시간이 가고 능소화의 시간이 왔다. 주황이 주렁주렁 늘어진 담벼락을 만나니,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피부에 와 닿았다. 넝쿨이 아래로 처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능소화라는 이름은 참 거창하기도 하다. 업신여길 능, 하늘 소. 하늘을 업신여긴다는 이 건방진 뜻을 어떻게 이해해보면 좋을까. 양반들의 꽃이라고도 불렸고 장원급제를 한 어사의 화관에 장식을 했다 하여 어사화라고도 불리는 꽃. 지식인들의 표상처럼 사용된 꽃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 꽃의 생김새는 참으로 순박하기만 하다. 생김새와는 다르게 기세와 자세는 하늘을 향해 꼿꼿해서 능소화라 불리는 꽃. 하늘을 능멸하는 듯해서가 아니라, 하늘을 능멸할 기세여도 가히 순박하기만 해서 사랑을 받아온 꽃. 친구와 함께 능소화 핀 담벼락을 바라보며 노천카페에 앉아, 냅킨에다 ‘능’과 ‘소’를 한자로 여러 번 끼적이며 얘기를 나누었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빨래를 걷느라, 창문을 닫느라, 장독 뚜껑들을 닫느라 온 집안을 재빠르게 움직이던 어릴 적 고향집에서도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선 아직 능소화를 본 적이 없다. 서울로 외출하여 오래된 골목을 걸었을 때에 비로소 능소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우리 동네 아파트 담벼락 아래에다 능소화 모종을 심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둔다. 그 순박한 생김새와 더불어 그 건방진 이름 하나를 곁에 두고 지낼 상상을 해본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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