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역설의 공간 연평도
역설의 공간 연평도
지난 5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어민들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어름에 있던 불법조업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한 뒤에도 6일 오후 여전히 중국 어선들은 엔엘엘 부근에 모여 닻을 내리고 쉬고 있다. 연평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성어기엔 한 달 1만여척 육박
밤이 되면 중국 어선 독무대
연평어장 사라질지 모른다
어민들은 불안해한다 해경 단속함정도 속수무책
“남북통일 안 되면 대책 없다”
보수정부는 군사원칙 최우선
지키려 할수록 잃는 결과만
남북 간 신뢰와 평화밖엔 합참의장이 크게 치하했지만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 보수 선동가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에 북한에 가서 엔엘엘을 포기하는 발언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했다”며 “연평 어장을 북한에 헌납하는 이적행위”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엔엘엘을 사수하기만 하면 우리의 경제적 이익은 지켜지는 것으로 상황을 호도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한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상과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과 같은 평화조치를 폐기해버렸다. 보수정부 아래서 서북해역 방어를 위한 엔엘엘 사수라는 군사 논리가 남북 협력이라는 평화의 논리를 압도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국방부와 해군 고위층은 “적이 엔엘엘을 한 치만 넘어와도 응징하라”, “적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면 그 손목을 잘라버려라”라는 강경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서북해역이 첨예한 긴장 속에서 전쟁의 바다로 돌변하는 결정적 사건은 2009년 11월10일에 일어났다. 이날 오전 11시27분에 북한의 경비정 등산곶 383호가 엔엘엘을 넘어와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2.2㎞를 계속 남하했다. 당시 언론에는 우리 경고사격에 북한 경비정이 응사를 하자 해군은 비상사태를 발령한 뒤 함포와 기관포로 대응사격을 가하여 북 경비정 등산곶 383호가 격파됐다고 보도됐다. 일명 ‘대청해전’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없이 북한 경비정을 격파한 최초의 승리에 고무된 당시 이상의 합참의장은 해군을 크게 치하하며 승전을 축하했다. 그러나 이 무렵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남북 비밀접촉이 진행되던 시점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군의 초강경 대응에 몹시 당황했다. 이상의 의장은 승전에 대해 대통령에게 크게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전화로 “꼭 그렇게 박살을 내야 했느냐”는 질책을 받고 어리둥절했다는 증언이 한 월간지에 소개된 바 있다. 최근 발매된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의 오병흥 예비역 준장이 쓴 <나비와 천안함>이라는 책에는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가 우발적으로 엔엘엘을 넘은 북한 경비정이 우리 쪽 경고로 다시 엔엘엘을 넘어가 북쪽 수역으로 간 상황에서 우리 함정은 계속 북 경비정에 경고사격을 했고, 북 경비정이 이에 소총으로 응사하자 우리 쪽 다섯 척의 함정이 북 경비정에 2분여간 5천여발의 총·포탄을 퍼부어 8명을 즉사시키는 과잉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교전수칙을 위반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과잉대응이 이루어지자 당시 김태영 장관도 오 준장을 불러 “해군이 해도 너무했다. 5 대 1이 뭐냐”고 탄식하며 “해군의 교전수칙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자신에게 지시했다고 책은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서북해역의 군사정세를 더욱 치명적인 분쟁으로 나아가게 했다. 오 준장은 대청해전으로 크게 피해를 입은 북한이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자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0년 안보위기를 겪은 뒤에 남북한 간에 격렬한 교전이 벌어질 뻔한 사건은 2014년 10월7일에 일어났다. 이날도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엔엘엘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우리 쪽 경고에 대응사격을 하자 최윤희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북 경비정을 “격파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연평 해역에는 우리의 유도탄 고속함이 격파 명령을 받고 주포인 76㎜포와 부포인 40㎜ 기관포를 발사했으나 모두 불발탄이 포신이 걸려 기능이 마비되었다. 그동안 북한 경비정은 중국 어선 사이로 들어갔다가 북쪽으로 도주해버렸다. 바다 지키려다 혼난 해병 보수정권 시기에 바다에서 남북 함정이 충돌한 계기는 어김없이 중국 어선 단속 과정에서 나타났다. 2010년 5월15일. 천안함 사건 여파로 남북이 몹시 긴장해 있던 시점에 중국 어선과 함께 북한 경비정이 백령도 인근 해역의 엔엘엘을 침범하자 당시 이상의 합참의장은 해군에게 “격파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해군 작전사령관은 “중국 어선에 발포하는 것은 작전예규에 위반된다”며 이를 거부하여 화상회의에서 합참의장과 언쟁이 벌어졌다. 때마침 합참 지휘통제실을 순시하던 김태영 국방장관이 합참의장의 발포 지시에 놀라 황급히 “지금 뭐하는 짓이냐, 모두 동작 그만”이라고 소리치며 사격 명령을 중지시켰다. 이 당시에도 중국 어선을 사이에 둔 엔엘엘 방어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드러났다. 그런데 2014년 말에는 더욱 황당한 사건이 터졌다. 연평도에서는 해병대가 섬 근처 500m 방어를 관할하고 그 바깥쪽 방어는 해군 관할이다. 그런데 코앞에서 연일 중국 어선이 활개 치는 모습을 보고 분개한 해병대 연평부대장 아무개 대령이 20㎜ 벌컨포로 섬에 접근한 중국 어선에 수십발 경고사격을 했다. 상부의 허가 없이 현장 지휘관이 발포를 하자 외교부와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즉시 조사와 문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연평도 어민들이 “그나마 바다 지키려고 한 유일한 군인을 처벌할 거냐”며 반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서북 5도 중에 북한 내륙과 가장 가까운 13㎞ 거리에 있는 연평도는 북쪽에서 해안을 따라 내려오던 엔엘엘이 급격히 동쪽으로 휘어지는 복잡한 지형이다. 그 엔엘엘이 꺾어지는 지점에 공교롭게 어장이 형성되어 있고, 여기에 중국 어선이 몰려들면 이를 단속하다가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는 매우 민감한 수역이다.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분쟁의 열점을 관리하는데 대북 강경책을 선호하는 보수정부는 군사적 원칙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것이 연평도 어민에 대한 조업통제와 함께 중국 어선에 대한 단속이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다. 적을 마주하고 군사적 승리를 갈망하는 군사지도자와 외교적 관계를 중시하는 정치지도자 간에 잦은 논쟁과 갈등이 유발되는 역설의 공간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엔엘엘 사수를 외치며 군사적 방어책에 몰입하였으나 역설적으로 이런 안보우선 조치는 연평도의 영토와 영해로서의 가치를 크게 잠식했다. 연평 해역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마저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오래도록 감내한 연평도 주민 일각에서는 “이제 남북 협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감한 연평도 해역에서 남과 북이 협력하여 적대적 행위를 중지하고, 서로 간에 오해로 인한 우발적 충돌을 관리하기만 한다면 중국 어선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내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태원 어촌계장은 북한의 수산물은 주로 중국에 팔리는데 이를 우리가 구매해주는 해상시장인 ‘파시’를 엔엘엘 선상에 운용하면 남북 간에 수산 협력의 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남북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야 가능한 공동어로구역이 어렵다면 남북 간에 조업규칙이라도 합의하고 수산물 거래라도 하자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우리 어선도 중국 어선이 차지한 자리로 그 조업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이 협력하여 중국 어선을 퇴치할 이유가 만들어진다.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꿈이 아니면 생존의 경로를 발견할 수 없다. 때마침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연평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일련의 주장들은 연평도가 생존하는 길은 오직 남북 간에 신뢰와 평화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연평도 주민들은 “평화가 최고의 복지이자 민생”이라는 메시지를 육지에 전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안보를 하자는 것인지, 무엇을 지키자는 것인지, 성찰하라는 외침이다.
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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