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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반기문발 ‘충청 대망론’은 없다

등록 2016-06-13 16:18수정 2016-06-21 10:56

4·13 총선 이후 ‘반기문 주’가 국내 정치시장에서 상한가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의 참패와 함께 그쪽 대선 후보들이 모두 몰락하는 바람에 여권 대선 후보 시장이 무주공산이 된 탓이 크다. 특히, 5월25일 제주의 관훈클럽 간담회는 비공개시장에 머물던 그를 일약 공개시장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방한 기간 내내 입으로는 점잔을 빼면서 발로는 정치 9단 뺨치는 ‘조율된 연기’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얼굴엔 외교관의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지만, 내미는 손 아귀엔 마당발 정치인과 같은 강력한 힘이 있었다. ‘대선 출마 시사’가 관훈클럽 쪽의 과잉 해석이라고 발뺌을 했지만,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질문임에도 굳이 출사표로 느껴질 만한 답변을 장황하게 한 것은 빠져나가기의 명수인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비공개 간담회라는 형식에 얽매여 ‘과잉 해석’을 하지 않았다면, 거기에 참석한 기자들은 지금쯤 모두 바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국내 정치권을 향해 노회하게 움직였다. 사실 그가 그 미묘한 시기에 관훈클럽 간담회를 받아들인 것부터가 ‘정치 이외’의 것으로 풀이할 수 없는 정치 행위였다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사람으로서 확신한다.

그가 이번에 와서 한 말 중에서 내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대적 과제로 국내의 통합을 말한 것이고, 또 하나는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어찌 보면 둘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국내 통합이 대선 출마의 명분이 될 수 있는 가치라면, 남북관계 개선은 대선 주자로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장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실행 여부는 둘째 치고 아이템 선정 능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문제는 너무도 빠른 시기에 그가 던진 말과 행동 사이에 엇박자가 났다는 점이다. 아직 불투명한 영역에 있는 북한과의 대화를 제쳐 놓는다면 국내 통합이 그가 발신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일 터인데, 그가 국내에서 벌인 행보는 너무 모순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국내 통합을 소리 높여 말해 놓고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충청 대망론’의 원조인 김종필씨를 찾은 것은 모순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또 충청 대망론을 열렬히 전파하는 사람들과 끈끈하게 접촉을 하고, 지역 패권주의를 연장하려는 ‘충청-대구·경북 연합정권론’의 주창자들에 편승하는 듯한 발걸음을 한 것은 말의 진정성을 떠나 그가 과연 이 시대를 감당할 대통령 후보로서 적절한 자질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의심하게 했다.

그가 충청 출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귀엣말을 연출하고, 김종필씨를 찾아 인사하고, 안동과 경주를 방문해 지역 정치인들과 연쇄적으로 만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대선 득표 전략이 충청 대망론과 그를 모태로 한 충청-대구·경북 연합정권론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그가 경주 회의의 연설에서 넌지시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새마을운동의 기여를 칭송했을 때, 당시 아프리카 3국을 방문하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반·박 동맹’의 러브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반기문 대망론자들은 이미 호남보다 많아진 충청권 인구와 지역적으로 최대 인구를 가지고 있는 대구·경북의 유권자를 산술적으로 더하면, 쉽게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충청표는 호남과 영남처럼 결집도가 끈끈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의 역대 선거를 통해 확인됐을뿐더러, 4·13 총선은 시대 흐름이 이미 퇴행적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고 있다는 걸 보여준 바 있다. 다른 비판은 다 차치하더라도 충청 대망론을 버려야만 반기문 대망론이 힘을 받고 의미도 있을 것이라는 게 충청 출신인 나의 가설인데, 그와 지지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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