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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특파원 칼럼] 반기문 총장을 도와주는 길 / 이용인

등록 2016-06-23 16:41수정 2016-06-23 19:18

항의 메일이 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거론돼도 비판적인 전문가와 인터뷰를 했겠느냐는 것이었다. 반 총장 임기 9년 반 동안 조용히 있다가 왜 하필 지금 그런 기사를 내보내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반 총장에 대한 평가를 묻는 유엔 전문가 토머스 와이스 뉴욕시립대 정치학과 대학원 주임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에 일부 독자들은 불편한 심정을 내보였다. 이런 지적들엔, 대선에 출마하면 여당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반 총장을 흠집내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우선, 반 총장이 야당의 대선 후보로 입길에 올라도 이런 인터뷰를 했겠느냐는 지적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여당 후보로 나오든 야당 후보로 나오든, 경선 과정에서 어차피 엄격하고 치열한 상호 검증이나 언론의 검증을 거치게 마련이다. 다만, 반 총장이 조급하게, 너무 일찍, 대선 행보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검증 시기가 예상보다 당겨졌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반 총장이 퇴임 뒤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보다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못다 한 역할을 좀 더 채워나가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일찍 도마에 오르는 게 솔직히 안타깝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지적에 대해선, 기사의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는 것이긴 하지만, 수용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반 총장의 대선 후보로서의 자격뿐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기자로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한국 출신의 유엔 사무총장이란 이유만으로, 반 총장에 대해 은연중에 관대하고 안이하게 평가했던 것 아니냐는 자성을 하게 된다. 부지불식간에 이뤄진 ‘우리가 남인가’ 식의 이런 감싸기가 반 총장에게 결국은 독이 된 것 아닌가 싶다. 그의 사무총장 재직 초기부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더라면, 한국 밖의 사람들로부터 지금과 같은 야박한 평가를 그나마 덜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위 외교관 중엔 서구 외신들의 반 총장에 대한 비판을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외신들의 평가가 오롯이 인종적 평가에만 기반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 총장 측근들한테도 이전에 ‘레거시(업적)가 없어 걱정’이란 말을 몇차례 들었다. 그래서, 와이스 교수가 반 총장을 비판하면서 “10년 동안 반 총장의 레거시(업적)가 무엇이었는지 얘기할 것이 없다”고 말할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와이스 교수의 비판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반 총장이 일관되게 개별 국가들과 공개적으로 맞서는 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유엔에서 만난 다른 외신 기자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놓고 있었다. 이들도 유엔 사무총장이 구조적으로 강대국의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엔 사무총장은 개별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의 공공선을 위해 유엔 고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들은 믿고 있었다. 유엔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개별 국가의 지도자로서도 문제해결형이 아닌 위험회피형 리더십은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사실, 유엔 사무총장이란 직위에 대해 국내에선 지나친 환상과 거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외국에서 밤낮으로 고생하는’ 한국 출신의 반 총장에 대해 국내에선 비판의 성역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냉정하게 감시하고 평가할 때라고 본다. 그것이 “임기 말까지 사무총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반 총장을 도와주는 길이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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