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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노인의 세계

등록 2016-06-08 19:25수정 2016-06-08 21:02

엄마는 요새 노트북을 티브이만큼 마주하신다. 인터넷 뱅킹도 하고 신문 기사도 읽으신다. 별것 없는 사용 범위지만, 이만큼 익히기 위해 공책 한 권 가득 요령을 메모해가며 공부하셨다. 각기 다른 비밀번호를 눌러 두 번의 관문을 통과해 집 안에 도착하는, 요즘 아파트의 보안 시스템도 훈련처럼 익히셨다. 교통카드가 생겼을 때에도, 지하철 출입구가 자동개폐기로 바뀌었을 때에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도 겨우겨우 그것들을 학습하셨다. 가전제품이 고장나 새것을 사용해야 할 때마다 짜증 반 집념 반으로 그 사용법을 배워오셨다. 어린아이였다면 새로 배우는 게 자연스럽고 쉬웠을 테지만, 자꾸만 겉도는 것들을 마침내 몸에 배도록 한다는 게 노인에겐 여간 버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처지라서 더 그런 걸까.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를 보는 듯하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어딘지 귀여워 보인다. 잠시라도 함께 있을 때면 보살펴드려야 하고 기다려드려야 한다는 점에서 더 어린아이와 닮았다. 더 노인은 더 아기와 닮았다. 늙어, 처음 태어날 때처럼 다시 아기로 돌아간다는 것. 한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기회는 아닐까. 새 선풍기를 앞에 두고서, 미세하게 바람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컨트롤러에 대해 설명해드리면서, 학습욕구를 보이며 경청하고 계신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아기에게 하듯 한 칭찬이 튀어나왔다. 엄마도 아기처럼 웃으셨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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