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리나라에서 <빵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제법 큰 관심을 끌었던 책의 원 제목은 <6천년의 빵>이다. 저자인 하인리히 야콥은 서문에서 조언을 준 노학자의 입을 빌려 그 작업이 얼마나 고된지 말한다. 빵의 역사를 쓰기 위해 해야 “할 일이라야 화학, 농업, 종교, 경제, 정치, 법에 대한 인간의 역사만 조사하면” 되며 “한 20년 자료를 모으면” 겨우 집필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야콥은 그 일을 제대로 했다.
그 책 중에서도 앞의 인용문을 읽었을 때의 지적 충격은 크고도 지속적이었다. 인식의 반전에 눈을 뜨게 만든 것이다. 역사를 쓴다면 마땅히 민족과 국가의 역사를 써야 한다고 믿던 내게 일개 먹거리의 역사를 쓰는 일이 훨씬 지난한 과정임을 일깨워줬는데, 그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국가나 민족이 중심이 된 역사를 쓰기 위한 자료는 많고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서술 방식에도 정해진 틀이 있다. 반면 음식의 역사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부터 막연하며, 방대한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비로소 서술이 가능하다.
최근에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시리즈물로 10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옛 인식을 확인하며 읽는데, 새로운 가르침까지 더해준다. 역사학에는 아직도 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뉴욕 지역이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간 과정이 그러하다. 그런데 거기에 ‘육두구’로 알려져 있는 향신료가 개재되어 있었다. 그 산지인 뉴기니 서쪽 룬 섬을 두고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충돌이 있었는데, 영국이 엉뚱하게도 미 대륙의 네덜란드 영토에 보복을 가한 것이다. 결국 네덜란드가 룬 섬을 보유하는 대신 뉴욕을 영국에 내주게 되었다.
여러 대륙의 지도를 바꿀 큰 변화의 원인이 향신료, 즉 양념이었다니! 하지만 그런 역사적 변화를 이끌 만큼 식생활을 비롯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중요하다는 배움을 얻는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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