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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이공계 병역특례와 실험실

등록 2016-05-26 19:09

3999명이 ‘자유의견’으로 쓴 글 모음을 문서 파일로 옮기니 200쪽 훨씬 넘는 분량이 빽빽이 채워졌다. 의생물학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 BRIC)가 벌인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과학기술인 회원’들이 짧게, 길게 자유롭게 써낸 글들이다(bit.ly/1WPvEzd). 사흘 만에 이렇게 많은 목소리가 몰린 건 무척 인상적이었다.

설문조사는 최근 국방부가 밝힌 군병력 수급 정책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국방부는 인구 감소로 병역자원이 몇년 새 급격히 줄어들 것에 대비해 그동안 시행해온 대체복무·전환복무 제도를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점차 폐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표현대로 “인구 절벽”이 2020년 무렵부터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임을 인구통계 자료는 분명히 보여준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출산율 급감으로 스무살 인구의 감소는 급격하다. 국방부로서는 병력을 현재 63만명에서 52만명으로 줄여도 모자라는 2만~3만명에 대한 해법을 이런 제도의 폐지에서 찾았을 것이다. 이공계 박사과정 연구생의 병역특례인 ‘전문연구요원(전문연) 제도’가 폐지 대상에 포함됐다. 한 해 선발 인원은 900명쯤 된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이공계 대학생들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을 벌이고 브릭은 긴급 설문조사를 벌였고 다른 곳에선 긴급 토론회도 열렸다. 교수 사회의 의견이 궁금해 메일을 보냈더니 이공계 교수 몇 분이 제도 폐지에 우려와 반대의 뜻을 담은 답장을 보내왔다.

어찌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병역제도는 국방 분야의 정책인데, 많은 과학기술인이 이토록 큰 관심을 갖고서 즉각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대학원생과 통화하고 기자회견의 목소리도 들어보고 다 읽지 못할 만큼 많은 3999명의 글 모음도 훑어보고 또 몇몇 교수의 얘기도 들어보고, 그러면서 전문연 제도가 병역정책의 울타리 안에만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73년에 생긴 이 제도는 40여년을 지나면서 이젠 과학기술 연구인력의 양성 제도 안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런 스며듦의 사정은 사실 조금 안타깝다. 병특 대체복무는 남자 박사과정생의 연구 지속성을 보장해주며 치열한 연구 경쟁의 현실에서 나름의 이점이 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출퇴근하며 연구·실험실에서 ‘반 학생, 반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이공계 대학원생의 처우 개선 요구와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주었던 게 병역특례 제도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도 폐지 논란이 일자 연구 환경이 더 나은 해외 연구실을 찾아 유학을 떠나는 ‘연구인력 해외 유출’이나 또다른 이공계 기피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높아지고 있다. 장기적인 진로 설계를 갑자기 바꿔야 하는 과학·공학자 지망생들의 당혹과 불만도 쏟아진다.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193명의 89%가 국방부 계획에 반대했으니, 과학기술인의 비판적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그러니,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이제는 기초 과학기술 연구인력의 양성에서 한 축이 된 것도 현실로 인정해야 할 듯하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군병력 수급 정책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건 현실의 연구·실험실을 움직이는 전문 연구인력 양성 정책의 시각에서는 큰 우려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제도 변화는 불가피한지 다시 따져보고, 불가피하다면 병역의 현실과 연구인력 양성의 현실을 함께 고려하며 진정한 국방력을 모색하는 논의들이 이뤄지면 좋겠다. 그래야 지금의 상황과 논란을 이해하고 해법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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