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칼럼]
국회 청문회 대상을 확대한 ‘국회법 개정안’(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기어코 거부권을 행사할 모양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잦은 청문회로 행정부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는 거고, 또 하나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야 이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속셈은 국회의 권한 확대를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일 게다.
지금까지 국회의 국정감사나 청문회 등으로 인해 행정부 업무가 어느 정도 차질을 빚은 것은 사실이다. 국회 출석을 위해 장차관들이 자리를 비우고 많은 공무원이 답변 자료를 준비하느라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기업인 등 청문회 증인들도 국회에서 하루종일 대기하다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증인을 범죄인 취급하듯 윽박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청문회 횟수를 줄여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고압적인 행태를 고치고, 청문회 운영 방식을 효율적으로 바꿔 실질적인 청문회가 이뤄지도록 하면 된다.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청문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그 의도가 딴 데 있음을 보여준다.
여권이 국회법 개정안을 ‘상시 청문회법’이라고 이름 붙여 마치 1년 365일 청문회가 열릴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명백히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청문회 대상이 확대되고 여소야대가 됐기 때문에 청문회가 더 자주 열릴 가능성이 커지긴 했다. 하지만 날마다 청문회를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야 합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매일 청문회를 열 만큼 국회의원들이 슈퍼맨도 아니다.
위헌 가능성 논란은 법리 논쟁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할 정도다. 국회의 자율적인 운영에 관한 국회법 개정에 대해 의회 독재의 위험성이 높다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특히 ‘위헌 가능성’이, 이전에는 ‘24시간 청문회’를 지지했던 헌법학자 출신의 새누리당 의원 당선자 입에서 나왔다는 건 이런 주장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음을 방증한다. ‘한국적 민주주의’ 운운하며 박정희 유신헌법에 정당성을 제공했던 출세지향적인 관변 헌법학자가 다시 부활한 것 같다. 전문 지식팔이의 전형적인 곡학아세다.
거부권 행사 이유로 들고 있는 두 가지는 모두 논리적 근거가 부족한 자가당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정부여당은 여론몰이를 하면서 거부권 행사의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득시키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행정부 마비, 위헌 가능성 등등은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한 거부권 논란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의회 권한 확대를 용인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은 국가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대통령이고, 국회는 늘 자신의 발목이나 잡는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데 국회의 권한 확대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부족한 박 대통령은 행정부 견제를 강화한 ‘청문회 활성화법’을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악법쯤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여당이 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국회가 여소야대가 됐기 때문이다.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면서 정부의 실정을 파헤치는 청문회 개최가 훨씬 수월해졌다. 정부로서는 그만큼 더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게 됐다. 당장 가습기 살균제 사태, 어버이연합 불법 지원 등 청문회 대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독단으로 흐른다. 그리되면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박 대통령은 지금 국민 모두를 불행의 늪으로 이끌려 하고 있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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