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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파견업종 확대 어떻게든 막아야

등록 2016-05-24 19:28


1982년에 결혼을 했다. 햇수로 9년째 다니고 있던 학교의 대형 세미나실을 결혼식장으로 빌렸다. 서예 동아리 방에 찾아가 큰 화선지에 ‘축 결혼’이라고 써 달라고 부탁해, 학교 정문에 세워져 있던 ‘불조심 강조기간’ 입간판 위에 덧붙여 결혼식장 입구에 세웠다. 결혼행진곡 녹음테이프를 준비하며 친구에게 물었다. “신부 입장할 때 나오는 곡이 바그너이고, 퇴장할 때가 멘델스존이지?” 친구는 “없는 살림에 그냥 하나 갖고 나눠 쓰지”라고 농담을 했다.

다행히 나를 좋게 봐주었던 교직원식당 조리종사원 노동자들이 싼값으로 국수를 말아 주었고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은 줄지어 서서 강의실 의자들을 세미나실까지 날라주었다. 사진 촬영 시간에 그분들을 가운데 모셔놓고 신랑 신부가 양쪽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2000년대 초반, 모교의 청소노동자가 쓴 글이 현상공모에 당선됐다. 그 글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 당시 우리는 점심으로 싸 가지고 온 찬밥을 여자 화장실 맨 구석 좁은 한 칸에서 둘이 무릎을 세우고 먹었습니다. 학생들이 바로 옆 칸에 와서 ‘푸드득, 뿡~’ 하고 용변을 보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김치 쪽을 소리 안 나게 씹었습니다.”

며칠 동안 그 내용이 머리에서 맴돌아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 청소노동자들이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건물 바깥쪽으로 돌출된 2층 계단 밑 공간을 막아서 마련한 작은 휴게실에서 그 노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한 분이 문득 말했다. “맞다. 그때 저 아래 건물에서 결혼식 올렸던 그 학생이잖아? 그날 우리가 의자도 날라주고 사진도 찍고 그랬잖아.” 아, 20여년 만의 만남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일 때는 자신이 원하면 그 일을 20여년 동안 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아웃소싱’돼 용역업체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이고 대학과 용역회사 간의 계약이 바뀔 때마다 고용승계 투쟁을 해야 한다. 청소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은 20여년 전보다 훨씬 더 열악해졌다.

그런데 왜 박근혜 대통령은 굳이 거의 모든 업종에 파견이 가능하도록 파견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일까? 지난 총선 참패 뒤 박 대통령의 첫 발언은 “노동개혁 추진”이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는 “파견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될 것”이라며 “통닭집만 하지 말고 뿌리산업, 제조업, 서비스업에도 (파견 노동자로) 가는 것이 자영업 근본 대책”이라고 했다. 한 네티즌은 “먹고살기 힘든 자작농이 자진해서 ‘노비’가 되는 일은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올바른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가 나온 건, 역사상 처음입니다”라고 꼬집었다. 정부 여당이 마련했던 안대로 파견법 개정이 이뤄지면 현행 32개인 파견 가능 업종이 수백개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경영자들에게 노동자 파견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다. 무능한 일가친척들에게 회사 직원들 중 일부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주면 그 사람은 “책상 하나에 전화기 한 대만 놓고” 불로소득을 누릴 수 있다. 파견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의 상한선을 규제하는 법률도 없으니 중간착취가 손쉽게 가능해진다. 그 파견이 지금은 32개 업종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그 업종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 경영자들은 파견이 가능하도록 파견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파견법 개정이 오래전부터 사용자 단체들의 민원사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임기 안에 그 민원 하나만이라도 해결해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러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많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재앙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파견법 개정 하나만이라도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시도에 맞서, 파견법 개정 하나만이라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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