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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나의 포스트잇

등록 2016-05-23 19:25

시 쓰기 수업에서, 한 학기에 두어 번 정도는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나쁜 기억을 시로 쓰는 여학생을 만난다. 말이나 글로 표현을 해본 적이 처음인 경우가 많다. 용기를 낸 것이다. 그 시를 읽는 많은 여학생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나만 겪어온 일인 줄 알았는데 너도 겪었구나 하며 우선 놀라는 것이다. 한 학기에 두어 번 정도는 여성 비하 의식을 드러내거나 강간을 꿈꾸다시피 하는 시를 쓰는 남학생을 만난다. 이 또한 용기를 내어 처음 자신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남학생들은 나만 겪어온 일인 줄 알았는데 너도 겪었구나 하며 놀라지는 않는다. 대개 가만히 있는다. 다만 여학생들이 윤리적 문제에 대해 가하는 비판에 놀란다. 우리들의 수업은 시 쓰기 수업이 아니라 다른 과목의 수업처럼 격렬히 번져간다. 심리학 수업 시간으로, 사회학 수업 시간으로, 정치학 수업 시간으로 불길이 번지듯 번져간다. 같은 국적에 같은 시대에 같은 나이로, 같은 신분으로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지만, 남성/여성이 실제로는 다른 국적에 다른 시대의 다른 나이로, 다른 신분으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함께 눈을 뜬다. 여학생의 용기는 살아갈 길을 생각하여 드러낸 용기였고, 남학생의 용기는 살아온 대로 생각하며 드러낸 용기였다는 사실을 토론을 통해 우리는 깨닫는다. 토론이 끝나면,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수업이 값지다고 말하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수업이 불편했다고 말한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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