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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그림책 선물

등록 2016-05-18 21:34

약속 앞에서, 빈손보다는 자그마한 선물 하나를 챙겨서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일 때에는 꽤 난감하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를 지나치게 고민하다가 가장 아무것도 아닌 듯한 선물을 챙기게 될 때가 많다. 받는 사람에게 그 고심의 흔적이 전달될 리는 거의 없을 물건 하나를 고를 때가 많았다가 언젠가부터는 조금 요령이 생겼다. 그가 누구든, 그림책 선물을 한다. 조금쯤 용감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험심 가득한 내용을, 조금쯤 밝고 경쾌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익살스러운 내용을, 아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기와 함께 읽을 만한 내용을 선택한다. 그림책을 선물하면 건네는 그 순간에 처음 만났다는 서먹서먹함이 누그러든다. 그림책 선물을 즐기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다. 두껍거나 명철한 책들이 지닌 부담스럽다는 선입견이 우선 없다. 그래서 받는 사람은 씨익 웃는다. 그 자리에서 펼쳐본다. 그림으로 가득 차 있고 문장은 최소한이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 자리에서 넘겨본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나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들여다본다. 어느 장면에서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어느 장면에서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내가 건넨 책으로 독서를 하는 표정을 그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된다는 것. 그걸 가장 짧은 시간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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