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오손 웰스는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를 영화배우나 감독으로 한정시키기는 어렵다.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했던 1930년대부터 그는 당시 가장 대중적인 매체였던 연극과 영화와 라디오 모두에서 활약하는 정도를 넘어 혁신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브로드웨이 식으로 번안한 <시저>는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히틀러의 나치즘을 연상시키며 원작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또한 흑인 캐스트만으로 <맥베스>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라디오에서는 <우주전쟁>이 그에게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H. G. 웰스의 공상과학소설을 라디오에 맞춰 각색하여 그가 연출하고 성우의 역할까지 맡았던 이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면 청취자들은 외계인이 실지로 침략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의 최대의 업적은 영화 <시민 케인>이다. 그것은 그가 만든 첫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영화연구소에서 선정한 100대 영화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뿐 아니라 영화계 인사들이나 팬들을 포함한 각종의 여론조사에서 역대 부동의 1위를 고수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찰스 포스터 케인의 일대기를 다룬다. 그는 사회적 봉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주의자로 경력을 시작하지만, 곧 냉혹한 권력 추구자로 변모한다. 그 ‘시민 케인’은 당시 신문계의 거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스트는 이 영화가 자신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이 영화의 상영을 중단시키려고 애썼다. 그가 소유한 언론 매체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고, 비평가들을 동원하여 흑색선전을 하였으며 소송을 걸기까지 했다. 그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 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한 이 영화는 결국 상영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케인들이, 즉 허스트들이 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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