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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모성, 그 불안과 혼돈의 자리

등록 2016-05-10 19:32


가족의 달에 엄마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데 어떻게 꺼낼지가 난감하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신 같은 전능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천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공항에서 산 어머니날 카드를 보고 있다. “제8요일, 신은 어머니를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뒤 그것을 굴릴(RUN)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어머니날!” 신의 대리인인 어머니, 공감 가는 데가 있지 않은가?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기에 거룩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런데 최근 들어 좀 다른 결의 여신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명문대학을 다니는 자녀를 데리고 자문하러 오는 어머니 중에 그런 분이 많다. 이들의 모습은 엄마라기보다 자신감이 물씬 풍기는 성공적인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에 가깝다. ‘당신이 가르쳐준 다섯 가지 레슨’이라는 제목의 어머니날 카드에는 그런 어머니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담겨 있다.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런 것이야”라며 ‘논리’를, “모두가 다리 밑으로 뛰어내린다고 너도 그러면 안 돼!”라며 ‘독립’을, “네 방에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구나”라며 ‘날씨’를, “그렇게 눈만 감고 있으면 꼼짝 못하게 되고 말아”라며 ‘미리 계획 세우는 것’을,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세상에 너를 데려왔으니 내가 너를 데리고 갈 수도 있다”며 ‘선택’에 대해 가르쳐주었다고 쓰고 있다. “당신은 세계 최고의 엄마”라는 말과 함께. 참으로 전능한 엄마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엄마들이 지금 대학의 ‘영재’들을 키워내고 있는 모양이다. 모성이란 “자녀를 지배하지 않으면서 주체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자녀를 당당하게 지배하는 엄마들, 그 집요함과 전능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 입시 전문가는 이런 전능감에 찬 어머니들로 인해 아무리 교육개혁을 하려 해도 한국에서 명문대 입학을 위한 사투를 없애기는 힘들 것이라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7월부터 전업주부의 0~2살 영유아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기본 6시간 동안만 어린이집을 무상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전업주부들이 집에서 키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앞서 말한 신이 되려는 엄마는 집에서 키우는 전업주부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6시간이면 아이를 위한 정보와 관리 계획을 짜는 데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이 제도로 타격을 받을 엄마는 양육과 함께 자아실현을 고민하고 ‘경력 단절’과 생계를 걱정하는 여성일 것이다. 가임기 여성들이 언제 직장을 구할지,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정 고용 상황에서 복지부가 왜 전업주부와 취업주부를 구태여 나누고 분열시키면서 이런 차별화 제도를 만들어 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복지부는 경제종속적 정책을 펼치기보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독자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는가? 보육예산을 늘림과 동시에 일과 육아의 어중간한 지점에 선 엄마들과 함께 다음 세대를 잘 키워낼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한혜정·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0~2살 자녀를 가정에서 키우도록 유도하려는 취지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 아이를 낳는 무책임하거나 불행한 부모는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정책의 방향은 꿈같이 들리겠지만 0~2살 나이의 자녀를 둔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하루 6시간만 일하고 아이를 키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위한 맞춤 육아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간다면 우리 사회에 돌봄과 상생의 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며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호혜적 감각을 가진 주부들의 시대는 가고 경쟁적이고 영리한 소비자 주부들의 시대가 왔다. 복지부의 임무는 신이 되려는 엄마, 그리고 개인이 되려는 엄마들이 뿜어내는 불안을 읽어내면서 그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다음 세대를 키워낼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지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운명을 당당하게 살아가게 해준 어머니들, 가정주부이자 사회주부였던 어머니들이 사뭇 그리워지는 5월이다.

조한혜정·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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