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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대통령 잘못 뽑은 대가는 혹독하다

등록 2016-05-09 19:15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었다. 부실기업만 도려내면 경제가 되살아날 거라는 기대를 하며 모두가 희생을 감수하고 고통을 참아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그 성격부터 다를 뿐 아니라 훨씬 고질적이다.

가장 큰 차이는, 외환위기 당시는 한보나 대우 등 특정 ‘기업’의 부실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조선이나 해운 등 특정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둘 사이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외환위기 때 기아자동차는 부실에 빠졌지만 같은 업종인 현대자동차는 기아차를 인수해 경영할 정도로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는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실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복합적이며, 정부나 채권단도 더 넓은 안목으로 구조조정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외환위기 때 했던 대로 특정 부실기업의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정부 주도의 ‘빅딜’ 등을 통해 위기를 해결했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실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부실기업’의 재무 구조 개선에만 매달려선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사태의 심각성은 경쟁력 약화가 조선이나 해운 등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철강이나 석유화학, 전자 등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주요 업종이 모두 비슷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잘나가던 자동차산업도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어느 업종 하나 믿고 기댈 곳이 없다. 우리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국제 경제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해당 기업에 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도 당시의 국제 경제환경에서 더는 통하지 않던 차입에 의한 투자 확대와 기업 확장 전략을 고수했던 국내 기업의 시대착오적인 경영 행태 때문이었다. 지금의 위기도 대외환경 변화에 적응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는 외환위기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제때 통제하지 못한 금융기관의 책임은 훨씬 크다. 그리고 궁극적인 책임은 사실상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관리해온 정부에 있다. 외환위기를 넘긴 2000년 3월 <금융·기업 구조조정 백서>를 발간한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감독 소홀과 미숙한 정책 대응 등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환위기에서 별로 배우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폭탄 돌리기 하듯 구조조정을 미뤄오면서 부실 규모만 더 키웠다.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주체를 명확히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가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는 실무 협의체에 불과하다. 이번 위기는 우리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주요 업종의 총체적인 경쟁력 약화에서 초래된 만큼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채권은행 등을 망라한 범국가적인 대응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위기의 본질과 심각성을 깨닫고 직접 나서야 하는데, 뒷전에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면서 남 탓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이런 상황에서는 ‘산업 구조조정’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너진데다 3당 체제로 갈라진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고,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서로 공방만 벌이다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남북 관계까지 파탄 낸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제 경제마저 거덜 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시대착오적이고 무능한 대통령을 뽑은 대가를 우리 국민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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