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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트럼프 현상, 미국과 한국 보수의 대위기 / 안병진

등록 2016-05-09 19:13



한국은 지식인으로 살아가기에 참 쉬운 나라다. 자신들의 예측과 총선 결과가 그토록 큰 격차로 나타났는데 치열하게 반성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미국에서는 그래도 트럼프·샌더스 현상에 대한 잘못된 예측으로 망신을 당한 이들이 요즘 자숙 모드이다. 왜 미국과 한국의 정치평론이 최근에 특히 빈번하게 틀릴까? 나는 이 화두를 풀기 위해 두 달간 미국에 머무르다 얼마 전 귀국하였다. 최근 쓰고 있는 책에서 미국과 한국 모두 지금은 거대한 지축이 흔들리는 문명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그 답을 찾았다.

문명의 충돌. 그토록 전세계 지식인의 저주를 받았던 새뮤얼 헌팅턴이 사실은 옳았다. 존 돔브링크 교수는 지금 시대를 기존 백인 가치의 황혼기로 비유한 바 있다. 즉 저물어가는 전통적인 백인 문명의 가치(트럼프주의) 대 상승하는 다문명 공존과 융합의 가치(힐러리)가 지금 충돌하고 있다. 한국 보수의 황혼기는 더욱 절망적이다. 기존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재벌 중심의 성장과 국가주의 발전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젭 부시 등 기존 보수 정객들은 이 황혼기 스산함을 넘어서는 미래 보수주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좌절했다. 보수 풀뿌리 유권자들은 차라리 트럼프 등 기업가 출신에게 위대한 보수의 르네상스를 기대하고 있다. 김무성 등 한국의 기존 보수 대선 주자도 ‘헬조선’을 넘어설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 유권자들은 지금 리더를 잃어버리고 당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극단적인 보수 정당의 뿌리와 사뭇 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안철수 의원 주변까지 기웃거리고 있다. 만약 안철수, 손학규, 유승민, 정의화 등이 중도의 협소한 틀을 넘어 미래 어젠다를 매개로 결합하면 흥미로운 정치 재편의 기적들이 이어질 수 있다. 2017년 12월까지 우리를 놀라게 할 여의도의 롤러코스터가 기다린다.

도대체 워싱턴 정치권이 어떻게 움직였기에 트럼프까지 등장한 걸까? 트럼프라는 극단적 복고의 운동은 공화당의 의회 지배 우선주의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토머스 섈러 교수의 지적처럼 공화당은 1995년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보수 혁명 이래로 백악관 대신에 의회를 장악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망가져왔다. 각 지역구 집토끼와 미국판 종합편성채널에 아부하며 더욱 극단적인 보수가 되었고 이는 곧 트럼프 등장의 무대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한국의 보수는 오랜 청와대 생활에다가 최근 안철수 3당 등장으로 긴장이 완전히 풀어져 망가졌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트럼프는 과연 대선에서 승리하고 공화당을 다시 ‘빅텐트’로 살려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 보수의 대분열이 임박한 걸까? 현재로서는 모든 게 불확실하다. 하나 분명한 점은 지금 ‘극단의 시대’에서 기존 인사이더인 힐러리는 더 대담하지 않으면 예상보다 고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더 오리무중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은 과연 깅그리치의 집토끼 고수의 길로 가서 트럼프로 완성될지, 아니면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스타일의 개혁적 보수로 분화될지 불확실하다. 대선 승리가 예상되는 야권이지만 이들은 골대 앞 수문장과의 일대일 대결에서조차 공을 공중으로 차버리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여야의 운명보다 더 중요한 점은 지금은 미국과 한국 모두 단순한 정권교체라는 시야를 넘어 문명전환기의 국가를 미래로 이끌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라는 사실이다. 알파고 시대에는 기존 이념 틀을 넘어 오직 미래로의 대담한 혁신과 공동체의 통합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는 자에게만 시대정신은 미소로 답할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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