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널리 인용되는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다. 불과 이태 전, 우주를 관측하는 플랑크 위성이 온 우주에 퍼진, 우주배경복사(CMB)라는 태초 빛의 미미한 흔적을 세밀히 관측하고 과학자들이 그 분포를 분석해 얻은 우주 나이다. 원시 빛의 요동 분포는 우주 구조뿐 아니라 그 진화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다. 지금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측정 결과이니 권위를 갖춘 수치다.
생각해보면 ‘우주의 나이’라는 말은 놀랍다. 우주에도 시작과 역사가 있다는 말이니까. 현대 우주론의 뼈대는 대폭발(빅뱅) 이후에 빛과 물질이 분리되고 이어 작디작은 기본입자들이 흩어지고 결합하며 원소를 만들고 질량 지닌 물질이 중력에 이끌려 이리저리 뭉치며 별, 은하를 만들고…, 그 오랜 공간과 물질 진화의 역사가 오늘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현재 우주에서 관측되는 여러 원소와 빛 신호는 이렇게 지나간 과거를 이야기해준다.
최근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설명하는 우주론 모형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는 새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bit.ly/1pIoPRx).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18개 은하를 자세히 관측해보니 팽창하는 중인 우주의 팽창 속도가 플랑크 위성이 측정한 것보다 8%가량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천문관측 결과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관측 도구가 이름난 허블 망원경인데다 이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이가 연구를 이끌고 은하 관측 방법으론 이제껏 가장 정밀한 결과라니 주목을 받을 만하다. 우주팽창속도(허블상수)는 우주 나이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138억년 우주 나이는 후속 연구를 거치며 다시 조정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우주 나이는 많은 변천을 거쳤다. 물리적 우주론이 대두한 뒤에도 1950년대까지 우주 나이는 30억~70억년으로 들쭉날쭉이었으며, 어떤 나이는 방사능 연대측정으로 잰 지구 나이보다 적어 논쟁거리가 됐다. 1990년대엔 관측을 정밀화해 정확한 팽창 속도를 구하려는 경쟁(이른바 ‘허블전쟁’)이 벌어졌다. 논쟁과 경쟁을 거치며 우주 나이는 점차 150억년으로 정착해 2003년까지 널리 쓰였다.
이후에 우주 나이는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는 위성들 덕분에 정밀성을 더욱 높였다. 나이는 윌킨슨 위성(WMAP) 덕분에 2003년 말 137억년으로 대폭 바뀌었고 플랑크 위성 덕분에 2014년에 138억년으로 소폭 조정됐다. 과학 담당 기자로 일하는 동안에 우주 나이는 150억년, 137억년, 138억년으로 변화했으니 우주 나이는 우주론의 격동을 보여준다.
이번에 제시된 ‘더 빠른 우주팽창속도’는 은하 관측을 통해 얻어졌다. 현재 우주팽창속도와 우주 나이를 결정하는 데엔 주로 위성의 우주배경복사 관측 방법이 쓰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은하와 우주배경복사 관측이라는 두 방법 사이에 긴장이 다시 일어나는 듯하다. 서로 다른 관측에서 비롯한 다른 결과는 우주론에 어떤 쟁점을 던져줄까?
우주론 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이런 긴장은 오히려 흥미로움을 일으킨다. 과학 기자가 경험한 우주 나이의 변화는, 도무지 끝을 다 알 수 없는 우주의 구조, 그리고 기껏 백세를 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당혹스런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지금 과학이 정체를 밝히지 못한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 무려 95%가량 차지하는 우주에서 이런 변화와 수정은 우리를 번잡한 현실에서 끌어내어 자연의 경이라는 상상으로 끌어들이는 힘인 듯하다. 우주론은 열려 있고, 그래서 변화하며, 그래서 매력적이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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